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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그날 밤, 최소아는 혼자서 집으로 걸어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사가 와서 말했다. “사모님, 유지아 씨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래요?” 최소아는 식탁에서 신문을 넘기며, 눈도 들지 않았다. “협력 건을 논의하고 싶다고 합니다.” 최소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눈빛엔 노골적인 비웃음이 스쳤다. “강진혁 씨한테서 푼돈 좀 받아 회사 이름 하나 올려놨다고, 이제 나랑 같은 급이라도 된 줄 아나 보네.” “그냥 밖에서 계속 서 있게 하세요. 정말 협상할 마음이 있으면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죠.” 몇 시간이 훌쩍 흘렀다. 대문 초인종은 부서질 듯 울렸고, 그제야 최소아는 사람을 시켜 유지아를 들여보냈다. 바깥에서 네댓 시간 내리 햇볕을 쬔 탓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던 유지아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 별장이 자기 집보다 훨씬 화려하다는 사실에 억눌렀던 분노가 그대로 치밀어 올랐다. “네 같은 년 때문에 내가 진혁 오빠랑 못 사는 거야! 네가 끼어들지만 않았으면, 지금 여기 사는 사람은 나였어!” 최소아는 푸흐 하고 웃었다. 마치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그녀는 손짓해 연수만 쪽 별장의 등기 서류를 가져오게 했다. “진짜 능력 있으면, 이 집을 사요. 그러면 강진혁 씨는 당신한테 넘겨줄 테니까요. 4조원 현금으로요.” 최소아는 원래부터 남의 가정에 끼어든 여자와 말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유지아가 정말 ‘사랑’이란 말을 알았다면, 강씨 가문이 힘들어졌을 때 가장 먼저 도망치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도덕’이란 걸 안다면, 강진혁이 자기에게 쓴 돈이 전부 최소아의 돈이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했다. 유지아의 얼굴이 확 굳었다. “돈 좀 있다고 잘난 척하지 마!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강진혁 사랑은 못 사!” 최소아는 웃다가 눈물이 맺히기까지 했다.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노골적인 경멸을 드러냈다. 사랑이라는 말, 그게 도대체 얼마짜리인데. 입만 열면 사랑 타령인 건 남은 게 그거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요. 돈으로 사랑 못 사죠. 근데 강씨 가문 며누리 자리는 살 수 있어요. 당신에게 평생 따라다닐 상간녀 낙인도, 두 번 다시 못 뒤집을 그쪽 이름값도. 그건 내가 충분히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말한 것 중에 대체 뭐가 사랑하지 않는 단 말보다 덜 중요해?” “그쪽이죠?” 유지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쪽이 경영 감각이 없다는 건 알았는데, 그래도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재계 기본 룰은 알 줄 알았거든요?” 최소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지아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움켜쥐고 뒤로 젖혔다. 고개가 확 꺾인 유지아는 억지로 최소아와 눈을 맞춰야 했다. “자기보다 더 센 사람 앞에서 자기 가치를 과대평가하지 마요. 보니까 강진혁 씨가 그쪽을 그렇게까지 사랑한 것도 아니네요. 정말 아꼈으면 브리센트에 가서 도움도 안 되는 석사나 따오게 하고 금칠만 해주진 않았겠죠. 벌써 강씨 그룹 핵심에 꽂아 넣었을 거예요.” 파악— 최소아의 손바닥이 유지아의 뺨을 그대로 갈랐다. 유지아는 그대로 비틀거리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주머니.” 최소아가 머리카락을 놓으며 담담히 말했다. 양미선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유지아의 머리채를 낚아챈 채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이 년이, 여기가 80-90년대 같아? 그때처럼 내연녀질 좀 하면 대충 위로 올라갈 줄 아나 보네? 어디서 감히 우리 도련님을 꼬셔대?” “놔! 머리 뜯기잖아!” 유지아는 비명을 질렀고 눈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양미선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대문 앞에서 유지아의 옷을 죄다 벗겼다. 양미선은 최소아가 결혼할 때 김은정이 직접 붙여 보낸 사람이었다. 그 강한 두 손으로 김은정을 건드린 여자들 얼굴을 몇이나 할퀴었는지 셀 수도 없었다. 이제는 그 손이 최소아를 위해 쓰일 차례였고, 최소아도 더는 그를 말릴 이유가 없었다. 연수만 이 고급 주택가에는 늘 파파라치들이 숨어 있었다. 오늘은 대형 사고를 잡았다며 셔터를 연달아 눌러댔다. 강진혁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유지아는 속옷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아는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강진혁은 자신의 재킷을 벗어 유지아에게 덮어주었다. 표정은 싸늘했고, 가까이 오지 말라는 기운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최소아.”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해명해.” 최소아는 방금 칠한 빨간 네일을 쓰다듬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해명이요? 제가 하는 일마다 언제부터 당신한테 설명해야 했는데요?” 강진혁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 최소아는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가 유지아를 안고 급히 떠나는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봤다. 강씨 가문이 들어온 순간부터 되돌아갈 길은 없었다. 그날 밤, 강진혁은 돌아오지 않았다. 최소아도 굳이 불을 켜놓고 기다리진 않았다. 늦은 밤, 멜라토닌을 먹고 잠들 준비를 하는데 아래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가린 남자 몇 명이 뒷문으로 침입해 방 문을 걷어차고 밀고 들어왔다. 최소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남자들과 뒤엉켜 몸싸움이 시작됐다. 날 선 칼이 그대로 그녀의 가슴을 향해 내리꽂혔다. 최소아는 몸을 틀어 피했지만 칼끝이 목덜미를 스치며 파고들어 붉은 피가 확 튀었다. “하...” 그녀는 이를 악물고 칼을 잡은 남자의 손목을 발로 걷어찼다. 칼이 허공으로 튀었고 그녀는 몸을 돌려 칼을 낚아챘다. 칼이 떨어질 때마다 비명은 뚝 끊겼다. 잠시 후, 방 안은 조용해졌다. 최소아는 목을 감싼 손에 번지는 피를 느끼며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힘겹게 집어 들었다. 화면이 잘 눌리지 않아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야 119로 전화를 걸었다. 그다음, 강진혁과의 카톡 창을 열었다. 전면 카메라를 켜고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피에 절은 옷, 새빨갛게 번진 목, 그 위로 희미하게 번지는 웃음. 어둠 속에서 드러난 새하얀 치아가 기묘하게 차갑게 빛났다. [미안해요, 여보. 이번에도 또 실망만 드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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