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진영재와 가장 허무했던 10년을 함께 한 강유나, 그녀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다 주고, 그가 원하는 건 다 줬다고 자부했었다.하지만 그녀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사지를 헤맬 때, 그는 그녀를 버리고 엄마를 친 가해자인 그의 첫사랑을 보석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결국 엄마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안고 세상을 떠났고 그는 자신의 첫사랑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그녀가 유골함을 안고 따져 물었지만 돌아온 건 이 한마디뿐이었다."못 견디겠으면 꺼져."그래서 강유나는 마음을 접었다.하지만 진영재가 끝까지 쫓아오더니 혼인 신고서를 휙 던지며 선언했다."유나야, 우리는 사실혼이야."갑작스럽게 생긴 서류를 보며, 남자의 팔짱을 끼고 있던 강유나는 거의 웃음을 터뜨렸다."작은 삼촌."그녀는 아예 눈도 돌리지 않고, 혼인 신고서를 진영재의 얼굴에 던지며 콧방귀를 뀌었다."너 정말 한심하다."지금 세월에는, 늦게 온 사랑만큼 하찮은 게 없었다.-------------------------------------------모두가 알다시피, 강유나는 내성적이고 침묵적이었고, 진영재는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는 성격이었다.서로 전혀 관계없는 두 사람이 한 연극 같은 사건으로 10년이나 얽히게 되었다.강유나는 그들이 어릴 적부터 맺어진 혼약이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감정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그러나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던 순간, 강유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영재는 애틋한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그녀를 위해 그 감정을 쏟을 일이 없었던 거였다.그와의 만남은 애초부터 잘못된 일이었다.그래서 잠시 스쳤던 인연이 막을 내렸고 그는 더는 날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윤채원은 진료실 안에서 전 남자 친구를 보게 된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성도 바꾸고 이름도 바꿔버렸으며 뚱뚱했던 모습에서 완전히 마른 체형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그래서일까, 배유현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 몰래 딸을 출산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엄마, 왜 울어요?”
딸이 손을 잡아 오며 물었다.
윤채원은 아이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
풋풋했던 학창 시절, 윤채원은 배유현을 몰래 지켜만 보다가 대학교에 진학한 뒤 드디어 그와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성한 대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고고하고 차갑기 그지없는 배유현이 뚱뚱한 여자와 비밀 연애를 하고 있는 소문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누구나 다 아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배유현의 21번째 생일날, 윤채원은 생일을 축하해주러 갔다가 닫혀 있는 문틈으로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냉랭한 목소리를 들어버렸다.
“내가 진심으로 걔와 사귈 리 없잖아. 그리고 나 다음 달에 유학 가.”
윤채원의 비참하고도 아픈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남자와 다시 재회해 버리고 말았다.
윤채원은 끊임없이 선을 그으며 배유현과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배유현은 지치지 않는 불도저처럼 그녀가 그어둔 선을 싹 다 무시한 채 자꾸 안쪽으로 넘어오려고 했다.
이윽고 넘어와서는 뻔뻔한 얼굴로 애교, 협박 등 갖은 수를 전부 다 동원해 그녀의 곁에 있는 남자들을 싹 다 쫓아내 버렸다.
“배유현 씨, 나 남편 있는 거 몰라요?”
배유현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으며 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더 나을 텐데? 솔직히 내가 더 어리고 잘났잖아요.”
“남편을 버리지 못하겠으면 채원 씨 애인이라도 시켜줘요. 내가 남편보다 훨씬 더 예뻐하고 사랑해 줄 테니까.”
7년 전, 뚱뚱했던 그녀와 몰래 연애했던 사람도 배유현이었고 7년 후인 지금, 기꺼이 상간남이 되겠다며 들이대고 있는 사람도 역시 배유현이었다.
“당신 진짜 미친 것 같아.”
“맞아. 그러니까 윤채원 씨가 나 책임져요. 평생 내 곁에서.” 















“서예은? 질린 지가 언젠데.”
주현진은 비웃음이 담긴 눈빛으로 술잔을 흔들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말했다.
“지안이처럼 애교 많은 여자가 진짜 여자지. 서예은은...”
구석진 곳, 유리잔 하나가 남자의 손바닥 안에서 갑자기 산산조각이 났다.
서예은은 연애 3주년 기념 케이크를 꽉 움켜쥔 채, 그의 선명한 손가락 마디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은하 그룹 대표 박시우는 천천히 손가락의 피를 닦아내며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서예은 씨, 나랑 결혼할래요?”
...
경성이 발칵 뒤집혔다.
모두는 그저 하찮은 디자이너가 재벌에게 매달린 줄 알았지만, 사실 이 결혼은 그가 5년 전부터 꾸민 함정이었다.
박시우의 프라이빗 갤러리에는 그녀의 옆모습이 천여 점이 걸려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비 오는 골목에서 고양이를 돌보던 모습부터 패리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보석을 정리하던 순간까지.
깊은 밤, 그는 담배를 물고 폭우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주현진의 CCTV 영상을 응시하더니 갑자기 자기 아내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
훗날, 한 경제 기자는 냉혈한으로 소문난 박 대표가 아내 앞에 무릎 꿇고 떨리는 손으로 임신 진단서를 들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반면 서예은은 결혼반지를 흔들며 가볍게 웃었다.
“박시우 씨, 놀랍죠?”
순간, 냉혈한으로 소문났던 남자는 눈가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그녀의 약지에 난 오래된 반지 흔적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예은아, 네가 스물두 살이었던 그 해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무... 무슨 말이요?”
“케이크가 너무 달콤했어.”
박시우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전생, 강다인은 오빠들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오빠들은 그녀의 재력으로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고 가짜 동생 김지우에게만 지극정성이었다. 친동생 강다인은 결국 집 밖으로 쫓겨나 객사하는 운명에 이른다.
환생 후, 강다인은 딱 한 가지 원칙만 따르기로 한다.
“이타적인 마음을 거두고, 쉽게 용서하지도 화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기적이더라도 혼자 멋지게 살 것이다.”
오빠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왜 내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지? 아, 다인이가 약을 안 줬구나.’
‘왜 시스템에 자꾸 문제가 생기지? 아, 다인이가 복구하지 않았구나.’
‘왜 신약 개발 속도가 이렇게 느리지? 아, 다인이가 실험을 도와주지 않았구나.’
‘왜 대본 수준이 이 따위지? 아, 다인이가 신작을 쓰지 않았구나.’
‘왜 요즘 경기에서 자꾸만 지는 거지? 아, 다인이가 은퇴했구나.’
오빠들은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다인아, 제발 돌아와. 우리는 가족이잖아.”
강다인은 차갑게 웃었다.
“사고는 난 다음에 문제를 발견하고, 주식도 오른 다음에 사야 했다고 후회하지. 이제야 잘못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용서할 줄 알았어? 절대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