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은은 업계에서 소문난 매혹적인 아가씨였다. 그녀의 살짝 올라간 붉은 입술과 눈꼬리는 사람을 홀릴 듯 아름다웠다.
이시현은 재벌가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상속자로 차갑고 고고했으며 금욕적이고 절제적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극과 극인 두 사람이 깊은 밤 마이바흐 뒷좌석에서 서로를 놓지 못한 채 얽히고, 자선 파티의 화장실에서 미친 듯이 탐하며, 개인 와인 창고의 통유리 앞에서 그가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고 박아댄 끝에 다리가 풀려버리는 순간들을 아무도 몰랐다.
또 한 번의 이성을 놓아버린 채 빠져든 밤이 지나간 뒤, 욕실에서는 빗물이 흐르는 듯한 샤워 소리가 들렸다.
서고은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아버지 서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주도에 있다는 죽을 날 앞둔 재벌가 도련님이 액운을 막아주는 신부를 급하게 찾는다면서요. 내가 시집갈게요.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 서동수는 억누르지 못한 기쁨이 가득했다.
“말만 해! 네가 시집만 가준다면 아버지가 뭐든지 다 들어줄게!”
“집에 가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았지만,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전화를 끊고 일어나 옷을 입으려던 순간, 시야 한쪽에 이시현이 옆에 두고 간 노트북 화면이 들어왔다. 카톡 대화창이 환히 켜져 있었고, 마지막 메시지는 ‘단비’라는 여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시현 오빠, 번개 쳐서 너무 무서워요...]
서고은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때 욕실 문이 갑자기 열리고, 이시현이 걸어 나왔다. 물방울이 그의 쇄골을 따라 흘러내렸고, 셔츠는 자연스럽게 단추 두 개가 풀려 있어 금욕적인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게 나른한 분위기를 풍겼다.
“회사에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
외투를 집어 들며 여전히 냉정한 목소리로 이시현이 말했다.
서고은은 붉은 입술을 가볍게 올리며 대답했다.
“회사 일 맞아? 아니면 네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