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김 소부님께서 이르시길, 어떤 조건도 논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덕헌국 병사 하나라도 해한다면 곧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하셨습니다.”
춘향이 그 말을 전하자 구상철은 손에 쥔 잔을 그대로 으스러뜨렸는데 사기잔이 바스러져 그의 손안에서 가루처럼 흩어졌다.
“그깟 환관 따위가 감히 덕헌국을 대신하여 전쟁을 선포할 자격이나 된단 말이냐!”
“그건 잘 모르겠사오나 그자가 세자의 사부라 하옵고 세자빈마마께서도 은근히 그를 경계하신다 들었습니다.”
“허, 어차피 그 죽일 놈이 고자질이나 할까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겠지!”
구상철은 호기롭게 내뱉었으나 속내까지 전쟁을 각오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반역이란 지난 삼 년간 가슴에 품은 생각이긴 하나 실제로 칼을 들기까지는 결단이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지금 그의 삶은 제법 안온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과연 그 수하들이 감히 강왕을 배반하고 구씨 가문을 따르려 할 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강씨 왕조야말로 정통이라 여기는 자들이 태반이었으니까.
‘덕헌국의 철기군이 몰려들 때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때는 어디로 도망쳐야 한단 말인가? 설마 관외로 도망쳐 약탈하며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것인가?’
김태진은 처음엔 이 일이 아주 간단할 줄 알았는데 김신재가 생각보다 아주 강했다.
연제국 왕실에도 환관이 없진 않으나 저리도 대단한 놈은 처음이었다.
“춘향아, 세자께서는 언제 행궁으로 돌아오신다 하셨느냐? 혹시 들은 바 없느냐?”
“김 장군님, 지금껏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김신재 말로는 세자께선 장군님의 십만 정예병을 받지 못한 까닭에 감히 군을 이끌고 옥문관을 나서 북정을 추격하지 못하신다 하셨습니다.”
이는 물론 김신재가 춘향에게 의도적으로 흘린 말이었는데 구상철에게 전하라며 은근히 흘려준 셈이었다.
춘향은 이중간첩으로서 신임을 얻기 위해선 이 정도의 확실한 정보는 들고 다녀야 했다.
김태진은 코웃음을 쳤다.
“허, 덕헌국 병사들이 관외 지형에 아주 무지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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