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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소유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지후 씨가 내 옷 갈아입혔잖아요.” 문지후가 주먹을 가볍게 쥐고는 시선을 다시 그녀의 얼굴에 두었다. 그녀는 물을 마시며 반짝이는 두 눈에 얄미운 미소를 띠었다. “신경 쓰여?” “부부 사이에 신경 쓸 게 뭐가 있어요.” 소유나는 대범하게 웃었다. “그냥 내가 조금 실망했다고 생각해요.” 문지후는 자신과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처럼 이렇게 의욕에 찬 경우는 드물었다. 그의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하면서도 얼굴 하나 붉히지 않았다. 문지후는 그녀가 낯 두꺼운 걸 알기에 더 상관하지 않았다. “지후 씨.” 소유나가 조용히 불렀다. 문지후는 귀찮다는 듯 그녀를 흘끗 바라봤다. 소유나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나는 지후 씨가 잘 지냈으면 해요.” 문지후의 손가락이 잠시 굳었다. 그는 그녀를 보지 않은 채 키보드를 다시 두드렸다. “내가 죽기 전에 잘 생각해. 이혼녀가 과부보다 낫잖아.” 소유나가 들고 있던 컵 속 물이 출렁였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미소 지었다. “다시 시집갈 생각 없어요.” “나한테 충성을 맹세하지 마. 그래 봤자 얻을 게 없어.” “진심이에요.” 소유나는 그의 차가운 얼굴 아래 숨어 있는 외로움과 슬픔을 느꼈다. “지후 씨, 나는 정말 지후 씨가 좋아요.” 그녀는 단순히 잘생긴 얼굴을 좋아했다. 변덕스럽다 해도, 금세 마음이 바뀐다 해도, 어쨌든 좋아하게 됐다. 문지후가 다시 손을 멈추고 눈길을 들었다. 그 눈 안에는 소유나가 이해하지 못할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유나 씨, 이거 계약 위반이야.” 소유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우리 이미 스킨십했잖아요. 안 되면 구룡시 시내 한복판에서 강아지처럼 짖을게요.” 문지후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순진했음을 깨달았다. 그런 협박이 그녀에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한순간 그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노트북을 들고 일어서서 그녀의 곁을 지나갔다. 스치듯 멈춰 서서는 그녀의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너는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야. 그 마음 접고, 여기서 살려면 얌전히 살아.” 차가운 목소리가 밖의 겨울바람보다도 서늘했다. 문지후는 서재로 돌아가고 거실에는 소유나만 남았다. 그의 말이 소유나를 큰 상처로 몰아넣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아직 자신을 버린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마음속에 누군가가 있으면, 다른 사람은 그저 남일 뿐이다. 그는 타협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소유나는 꽉 닫힌 서재 문을 바라보았다. 생의 끝자락에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건, 얼마나 큰 아쉬움일까. ... 소유나는 미리 회사에 출근 신고를 하고 상사 사무실에서 나오다 주지환을 보았다. 인사하려 했지만 그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주지환이 멀어지자 옆 사람이 다가와 속삭였다. “거절당해서 체면이 깎였대요. 처음에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상사랑 싸우기까지 했다니까요.” “어쩐지.” 소유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 “근데 유나 씨 남편은 무슨 일 해요? 운전기사도 있던데. 집이 아주 부자인가 봐요?” 동료가 수군댔다. 소유나가 웃었다. “기회 되면 직접 물어봐요.” “좋아요.” “저는 일하러 갈게요.” 소유나가 자리를 떴다. 구룡시로 발령받자 하는 일은 비슷해도 차이가 컸다. 그녀는 적응도 해야 하고 내년 박람회 준비도 해야 했다. 바쁜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대신 시간이 빨리 간다. 해가 저물어 동료들이 퇴근하면서 불렀지만, 그녀는 할 일이 남아 있기에 남았다. 사무실에는 그녀 혼자였다. 시간을 보니 여덟 시가 넘어 있었다. 갈 곳도 없으니 더 야근하기로 했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컴퓨터를 끄고 나왔다. 구룡시의 겨울은 건조하고 칼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듯했다. 목도리를 두르고 돌아가는 길에 국수 한 그릇을 먹었고, 호빵 하나를 사서 먹으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열 시 반이었다. 수다를 떨던 유연서가 그녀가 문지후의 집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물었다. “포기한 거야?” “원래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어.” 소유나는 겉옷을 벗고 물을 끓여 족욕하며 마스크팩을 붙였다.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 곁에 안부 물어 줄 사람도 없으면 안타까울 것 같았어.” 그녀는 웃었다. “근데 그건 내 일방적인 바람일 뿐, 그 사람은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아.” “그럼 왜 이혼 안 해? 설마 유산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겠지?” 소유나는 마스크팩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결혼했으니 굳이 이혼하고 싶지 않아. 귀찮잖아.” 유연서가 웃었다. “솔직히 얼굴이 그렇게 잘생겼는데, 나라도 안 헤어지겠네.” 밤 열한 시, 소유나는 침대에 누워 릴스를 넘기며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문지후에게서는 전화도, 안부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유연서도 연말 업무로 분주해 수다 떨 시간이 없었다. 설을 일주일쯤 앞두고 일이 마무리되자, 휴가를 내고 고향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남은 사람들은 노래방에 모여 스트레스를 풀기로 했다. 소유나는 늘 노래 부르는 대신 구석에서 휴대폰을 만지거나 가사를 보며 속으로 흥얼거렸다. 재미는 없었지만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중간에 그녀는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막 나가자마자 문지후와 진우, 그리고 처음 보는 남자와 마주쳤다. 보름 넘게 못 보고 연락도 없던 터라 인사를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문지후가 외부에서는 둘의 관계를 말하지 말라 했으니 인사하지 않기로 했다. 눈이 마주친 뒤, 그녀는 곧장 그들 옆을 지나쳤다. “어, 방금 그 여자 꽤 예쁘던데.” 허진서가 소유나의 뒷모습을 돌아보며 안경 너머로 눈을 반짝였다. 진우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문지후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세 사람은 룸에 도착해 몇 마디 나누다가 허진서가 갑자기 일어섰다. “어디 가?” 문지후가 물었다. 안경을 고쳐 쓴 허진서가 피식 웃었다. “아까 만난 그 여자 알아보러.” 문지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진우는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망설였다. “아무 여자나 다 알아보려고 하지 마.” 문지후는 담담히 담배를 피웠다. “아무 여자라니. 나는 예쁜 여자한테만 이러는 거야.” 겉은 점잖지만 속은 방탕한 허진서가 웃었다. 그는 잘생긴 얼굴로 수많은 순진한 여자들을 홀렸다. 문지후는 연기를 내뿜고 눈을 가늘게 떴다. “예쁜 여자들은 다 가식적이야.” “뱀한테 한 번 물렸다고 밧줄도 무서워할 필요는 없잖아.” 허진서가 또 말했다. “그냥 인사하는 거지, 결혼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는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진우는 문지후가 끝내 소유나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참고 있는 모습이 정말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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