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그날 이후, 하도겸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심예원과 하은서는 서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은서의 생일이 다가오자, 심예원은 딸과 함께 어린이집에 가져갈 초대장을 준비했다.
하은서는 친구들이 모두 오기로 했다고 신나게 말했다.
생일 이틀 전, 유치원 앞에서 심예원은 하도겸과 소혜진을 마주쳤다.
그들 사이엔 소유준이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었고 하도겸과 소혜진은 그를 다정히 달래고 있었다.
보아하니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하도겸이 보호자로 어린이집에 불려 온 것이었다.
심예원은 그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하은서에게는 한 번도 아빠 노릇을 해준 적 없었던 그가, 다른 아이의 아빠 역할을 그토록 성실히 해내고 있다니.
‘남의 자식한테까지 저러는 거 보니, 사랑하면 그 댁 지붕 위 까마귀까지 예뻐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
시선을 돌린 그녀는 교실에서 나오는 하은서를 바라보았다.
하은서는 하도겸 곁을 지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인사했다.
“아저씨, 이모... 안녕하세요.”
하도겸은 무언가 느껴졌는지 고개를 돌려 하은서를 바라보았다.
“예원 씨도 아이 데리러 오셨어요?”
소혜진이 그녀를 발견하고 먼저 다정히 인사를 건네자 심예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러워요. 따님이 정말 예쁘고 착하잖아요. 우리 아들은 사고만 치고요.”
소혜진이 웃으며 푸념했다.
“똑같이 아빠 없이 크는 애들인데, 예원 씨는 어떻게 그렇게 잘 키우셨어요?”
심예원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때 하은서가 먼저 나서더니 하도겸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소유준도 아빠 있잖아요. 새 아빠가 잘 가르치면 되죠.”
하도겸은 움찔하며 딸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아가야, 그런 말 하면 안 돼. 이모랑 아저씨는 그냥 친구야...”
소혜진이 당황한 듯 웃으며 얼버무렸다.
하은서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았는지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이모도요.”
하은서가 심예원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심예원은 하도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멀어질수록 그 시선은 점점 더 무겁게 꽂혔다.
‘하도겸,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야. 단 한 번 남았어.’
그리고 그날 밤, 하도겸이 집에 돌아왔다.
기분이 가라앉은 하은서를 달래기 위해 심예원은 아이 옆에 앉아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둘 다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집에 온 거예요?”
“왔어?”
두 사람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도겸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들고 있던 선물 상자를 하은서에게 내밀었다.
“저한테 주는 거예요?”
뜻밖의 선물에 하은서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번은 하도겸이 준 두 번째 선물이었다.
“응.”
“아저씨, 고마워요!”
하은서는 참지 못하고 포장을 풀었고 상자 안에는 레고 자동차가 들어 있었다.
심예원은 찌푸린 얼굴로 그 장난감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 소혜진의 SNS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레고 자동차는 하도겸이 소유준에게 줬던 선물 중 하나였다.
‘설마... 소유준이 안 받은걸?’
“애 좀 똑바로 가르쳐. 쓸데없는 말 하지 않게.”
하도겸이 날이 선 목소리로 심예원을 쏘아붙였다.
“그리고 혜진이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그가 돌아온 이유는 경고 때문이었다. 소혜진에게 무언가를 말할까 봐, 그것이 걱정돼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심예원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더 할 말 있어?”
하도겸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은서 어린이집 옮겨. 어디든 좋으니 고르고 나서 알려줘. 내가 처리하게 할게.”
심예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사이를 들키지 않으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아이를 한 번 바라본 그녀는 마음이 저렸다. 고개를 숙인 하은서의 눈물은 어느새 자동차 위에 떨어져 있었다.
“알았어.”
심예원은 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하도겸은 목적을 이뤘다는 듯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하은서가 벌떡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아저씨! 모레 제 생일이에요. 저랑 같이 보내주면 안 돼요? 딱 한 번만, 이번 한 번만요.”
용기를 내어 말하는 하은서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심예원은 고개를 돌렸다. 차마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없었다.
하도겸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고 하은서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