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나는 영락궁에서 잃어버린 진짜 옹주였다.
돌아온 후 나는 가족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건만 아버지는 양녀로 삼은 민자희 때문에 연유를 묻지도 않고 나를 꾸짖고 때렸으며, 그녀가 나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와 어려서부터 혼인이 정해진 영의정 댁 도련님마저도 민자희의 편을 들었다. 그녀는 고귀하고 우아하며 글을 알고 예의 바르다 하였고 나는 제멋대로이고 고집스러우며 비열하다고 했다.
후에 아버지는 내가 양녀에게 해를 끼칠까 염려하여 나를 달래 무공을 없애는 약을 먹게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약이 일찍이 이 세상에서 가장 독한 독약으로 바뀌었음을 몰랐다.
독이 퍼질 때, 아버지는 당황하여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내게 달려오며 죽지 말라 애원했다.
‘아버지, 엎질러지는진 물은 더는 담을 수 없지요.’
...
영락궁으로 돌아온 첫 생일날, 아버지는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이를 사양하였다.
예전에 단 한 번도 생일을 챙겨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번에는 그저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아버지와 군부인 민지유, 그리고 고문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 나는 손수 부엌에 들어가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렸다.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나 그래도 16가지 음식을 만들어내었다.
아버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과연 본 대군의 딸이로구나.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만들 줄 알다니.”
나는 조금 쑥스러워 답하였다.
“아버지, 제가 처음으로 부엌에 들어간 거라 혹여 잘하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보아주세요.”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손바닥의 온기가 내 손등을 통해 전해지며 내 불안하게 뛰는 마음을 달래줬다.
“아버지가 있는데 누가 감히 너에게 불평한단 말이냐?”
나의 마음은 행복감으로 가득 찼다. 나는 급히 아버지께 음식을 짚어드렸다.
그때 하인이 갑자기 뛰어 들어왔다.
“대군마마, 옹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
아버지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으신 듯 벌떡 일어나 외쳤다.
“누가, 누가 왔다고?”
“대군마마, 안양 옹주마마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안양 옹주라는 이름을 똑똑히 들으시자 아버지는 급히 흥분하여 밖으로 달려나가셨고, 군부인 민지유와 고문보 또한 그 뒤를 따랐다.
나는 영문을 몰라 곁에 계신 시녀에게 물었다.
“안양 옹주는 누구지?”
“아씨, 안양 옹주마마는 대군마마께서 민간에서 들인 양녀입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길을 잃었던 다음 해, 아버지는 나를 찾아 헤매는 길에 갈 곳 없는 어린 여자아이를 만났던 것이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아이를 보고 아버지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녀를 양딸로 삼아 영락궁에서 키웠다.
그녀는 나의 빈자리를 채웠고, 아버지는 내게 줄 수 없었던 사랑을 모두 그녀에게 쏟으셨다.
그녀의 이름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안양 옹주라는 칭호까지 내렸다.
2년 전,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남월을 순찰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3년 동안 밖을 떠돌며 세상만사를 체험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어찌하여 영락궁 안에는 하인들이 매일 청소하는 한 채의 빈 뜰이 있었는지.
내게 준 물건들을 두 개씩 준비했던 것도 모두 그 다른 딸을 위한 것이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서 한 사람이 아버지 일행에게 둘러싸인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키는 컸으나 매우 여위었고 남루한 차림에 얼굴도 더러웠다.
지친 기색은 아버지를 보는 순간 서러움으로 변했다.
그녀는 목멘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그러면서 아버지 품에 안기며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그녀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착한 자희, 고생이 많았구나.”
그녀가 아버지 품에서 나오자 민지유와 고문보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안부를 물었다.
나는 곁에 서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나를 발견한 척하며 놀란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저분이 바로 언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