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하지만 민자희의 이 저급한 수법은 통했다.
아버지는 조회를 마치고 궁에서 돌아오자마자 곧장 내 처소로 찾아오며 꾸짖었다.
그는 연유를 묻지도 않은 채 호통친 후 나에게 물었다.
“화연아, 네 잘못을 알겠느냐?”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어제 저의 생일잔치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아버지께서 제 곁에 계시니 아무도 저를 탓하지 못할 것이라 했잖습니까? 하지만 지금은요? 민자희가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아버지는 곧이곧대로 듣고는 저를 의심하는군요.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미 딸이 있는데 왜 굳이 저를 찾아왔습니까?”
나는 민자희의 그따위 수법들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오직 아버지의 태도였다.
이 세상에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화연아, 너는 본 대군의 딸이지만 자희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 동안 네가 밖에서 고생한 것은 이 아버지의 잘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제멋대로 구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늘부터 너는 이 저택에서 잘 반성해야 한다. 본 대군의 허락 없이는 한 발걸음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는 되돌아보지도 않은 채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청심은 억울해서 말했다.
“아씨, 대군마마께서 어찌 그러시는지요. 분명 옹주마마께서 아씨가 자기 자리를 빼앗았다고 비꼬아 말했거늘 어찌 대군마마께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로 아씨에게 벌을 내리십니까?”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을 가슴 위에 올리자 희미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 청심도 훤히 꿰뚫어 보는 이치를 어찌 아버지께서 모르겠는가?’
밤이 깊어질 무렵 나는 청심과 함께 몰래 저택을 빠져나왔다.
어제 호림에게 음식을 보내주기로 약속했지 않았는가? 아버지는 약속을 어길 수 있어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귀생문을 떠나던 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어질고 착한 사람이 되어 내 손에 묻은 살육의 업보를 씻겠다고.
내가 근신되어 민자희는 자신이 한 수를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며칠 동안 조용했고 나 또한 며칠간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낮에는 청심과 차를 마시고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었으며 밤에는 몰래 저택을 빠져나가 호림을 비롯한 극장의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아버지는 그날 나를 호통치셨으나 매일같이 나의 뜰에 잠시 들렀다.
나는 일부러 아버지와 말을 섞지 않았으나 그는 조용히 나를 위해 사 온 작은 물건들을 내려놓으며 나를 달랬다.
이날 나는 꽃방에서 모란꽃을 샀다.
청심 말에 의하면 모란꽃은 어머니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꽃방에 가서 가장 아름다운 화분으로 하나를 골라왔다.
이리저리 살펴자 가지치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 손으로 직접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때 민자희가 또다시 찾아왔다.
나는 귀찮아 상대하고 싶지 않아 청심에게 명했다.
“청심아, 문을 닫아라.”
나는 민자희와 말을 섞기도 싫었다. 비록 영락궁이 나의 집이었으나 아버지가 그녀를 거두어 기르기로 했으니 내가 무시하며 보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는가.
하지만 민자희는 눈치가 없는지 시녀들을 시켜 내 문을 막게 했다.
“왜 문을 닫습니까? 언니는 저를 볼 면목이 없습니까?”
나는 차갑게 대답했다.
“나가거라.”
“언니, 저를 환영하지 않습니까?”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그 말에 민자희는 잠시 말문이 막히더니 기세가 조금 꺾이는 듯했으나 곧 다시 오만하게 굴었다.
“언니, 어려서부터 아버지 곁에서 자란 사람은 저예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문보 오라버니 모두 저를 좋아했지요. 언니가 친자식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언니는 지난 몇 년 동안 밖에서 네가 지난 몇 년간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영락궁에서 이런 옹주를 용납하겠습니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민자희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어서 눈치껏 영락궁에서 떠나야죠.”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잊지 마라. 나는 이씨 성을 가졌지만 너는 민씨 성을 가졌다. 아버지가 너를 양녀로 받아들였다 한들 어쩌겠느냐? 넌 여전히 군부인 민지유의 성을 따라 민자희가 되었으. 앞으로 이 영락궁을 이어받을 사람은 바로 나 이화연이지 너 민자희가 아니다.”
내 말에 그녀는 급소가 찔린 듯 발끈하며 내 모란꽃을 발로 걷어차려 했다.
나는 발을 뻗어 그녀를 막으며 손에 든 가위를 휘둘렀다. 순간 그녀의 화려한 치마는 한쪽 소매가 잘려나갔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고 나의 가위는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앞으로는 나를 귀찮게 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너를 죽일지도 모르니까.”
“청심아, 밖으로 내보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