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생일날, 나는 납치범에게 끌려가 꼬박 사흘 밤낮을 고통 속에 시달렸다.
구조되었을 때, 옷은 너덜너덜했고 온몸은 흙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때 김신우가 달려왔다. 그는 기자들을 향해 소리치며 나를 감싸 안았고 눈가에는 분노와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나를 품에 안은 채 청혼했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김신우의 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잠결에 나는 김신우가 경호원과 나누는 대화를 듣고 말았다.
“신우 형, 형수님한테 약을 먹이고 사람을 풀어서 폭행한 건... 우리가 너무 한 거 아니에요? 그 여자를 위해서 형수님의 명예를 망가뜨리려고 해도 다른 방법이 있었잖아요.”
김신우는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조야. 한 여자의 명예를 망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하지만 괜찮아. 난 하영이가 제일을 원하는 결혼을 해줄 수 있으니까. 내가 남은 인생으로 갚으면 그걸로 충분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내 마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행복한 결혼 생활이 결국 나의 무덤이 된 셈이다.
“신우 형, 형수님을 그룹의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기엔 우리 사람이 많으니까...”
“국립 병원으로 가.”
“국립 병원은 사람도 많고 기자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 양심 없는 언론에서 형수님을 어떻게 비난할지 모르잖아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는 게 더 좋아. 이왕 시작했으니 마지막 한 방을 제대로 쳐야 해. 그래야 민태호가 하영이를 완전히 포기하고 여진이와 결혼할 수 있을 테니까. 여진이가 마음 놓고 민씨 가문 사모님이 되게 해야지. 더는 말하지 마. 난 피곤하니까 좀 쉬어야겠어.”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김신우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체온이 이제는 두렵기만 했다.
한때 김신우와 함께 많은 웃음을 나누었던 이 차는 이제는 마치 지옥 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민태호가 바람을 피워 우리가 이혼한 뒤 김신우가 왜 그렇게 나를 집요하게 붙잡았는지.
지금 보니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라 이여진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앞서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두 남자, 결국 그들의 마음속에는 같은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내가 아니었다.
이 생각에 나는 속이 울렁거리며 위장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숙여 격렬하게 구토하기 시작했다.
내 신음에 잠들어 있던 김신우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급히 다가와 내 등을 두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자기야, 어디가 아파? 조금만 더 참아.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
그러면서 운전석 옆에 있던 내가 평소 쓰던 컵을 건넸다.
컵 안의 물 온도는 적당했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을 챙기는 건 김신우가 항상 잘해왔던 일이다.
“자기야, 천천히 마셔.”
김신우는 말하면서 몸을 내게로 기울였다.
나는 그가 입버릇처럼 ‘자기’라고 부를 때마다 역겨움이 다시 밀려왔다.
몇 분 후에야 나는 겨우 진정되었다.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니 마침 차가 르바나 그룹 산하의 병원을 지나고 있었다.
김신우의 몸이 살짝 굳어졌지만 금세 평소처럼 나를 품에 안았다.
그는 부드럽게 내 귀밑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자기야, 그룹의 임경석 선생님의 의료 수준이 아직 한계가 있어. 이렇게 어렵게 너를 구해냈으니 실수라도 있으면 안 돼. 난 용납할 수 없어. 너를 위해 최고의 전문가를 예약했으니 우리 제대로 검진받자. 걱정하지 마. 아까처럼 내가 기자들을 뒤로 막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