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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수화기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 “그러면...” 지유란이 망설이며 물었다. “그러면 너를 좋아하는 사언, 은수, 지환 중에서 고르려고?” “그 세 사람도 아니에요.” 지유란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면 준서만 남았는데. 두 사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까 준서일 리도...” “이준서 선택할래요.” 문성아가 지유란의 말을 자르며 꿋꿋하게 말했다. “엄마, 나 이준서와 결혼할래요.” “뭐라고?” 지유란의 언성이 높아졌다. “성아야. 너 어릴 적부터 준서와 앙숙이었잖아. 5살 되던 해 준서를 수영장에 빠트리고, 10살 되던 해에 준서 생일 케이크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15살 되던 해에 준서가 제일 아끼는 한정판 축구화를 분수에 던져넣었는데...” 문성아는 지유란이 읊조리는 두 사람의 명예로운 서사를 들으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1년 전만 해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러더니.” 지유란이 말을 이어갔다. “준서가 외국 나간 것도 다 너 때문에 화나서 그런 거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결혼하겠다는 거야?” 문성아가 눈을 아래로 뜨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회귀하고 나서야 문성아는 다섯 후보 중에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이준서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생에 문성아는 같은 자리에 서서 들뜬 마음으로 지유란에게 안도혁과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의 문성아는 도도하면서도 우아한 안씨 가문 도련님이 여자 하나를 위해 가짜 죽음으로 결혼을 피하며 20년간 그녀를 고통에서 몸부림치게 할 줄은 몰랐다. 경북에서 손꼽히는 가문인 문씨 가문에서 태어난 문성아는 어머니 지유란이 안씨 가문, 정씨 가문, 하씨 가문, 강씨 가문 사모님과 좋은 친구였고 다 같은 시기에 임신했는데 다른 다섯 가문은 아들이고 오직 문씨 가문만 딸이었다. 문성아가 태어나는 날 다른 사모님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서로 안아보고 싶어 안달이다가 결국에는 누가 미래의 시어머니가 될지를 두고 얼굴을 붉히며 싸웠다. 난감했던 지유란은 어쩔 수 없이 문성아가 22살이 되는 날 다섯 가문에서 약혼자를 선택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생에 문성아는 안도혁을 선택했다. 청춘을 다 바쳐 쫓아다닌 남자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전야 안도혁은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문성아는 포기하지 않고 안도혁의 유해를 20년이나 찾아다녔다. 정사언, 하은수, 강지환은 그런 문성아를 지키며 사랑을 속삭이는 것으로 문성아가 그늘에서 나오기만을 바랐다. 문성아도 그런 세 사람이 참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안도혁을 잊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비 오는 밤. 론디안의 거리를 누비던 문성아는 죽었다던 안도혁이 소유희를 벽에 누르고 키스하는 걸 똑똑히 보았다. 문씨 가문에서 후원해 준 가난한 학생 소유희는 안도혁의 품에 안겨 있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정사언, 하은수, 강지환은 두 사람이 키스를 끝내자 얼른 소유희에게 외투를 건네고 먹기 좋게 깎은 과일을 입에 넣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키스를 그렇게 오래 하냐?” “유희야,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도혁과 알콩달콩 예쁜 사랑해.” 다른 세 명이 부드럽게 말했다. “문성아 옆에는 우리가 있으니까 너를 찾아낼 일은 없을 거야.” 순간 문성아는 애초에 안도혁이 좋아한 사람은 소유희고 소유희를 위해서라면 가짜 죽음을 만들어 외국으로 도망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세 명도 마음에 둔 사람은 소유희였지만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일부러 문성아를 좋아하는 척한 것이다. 진실을 알고 난 문성아는 허둥지둥 도망치다가 사고를 당했고 네 남자는 길 맞은편에 선 채 차가운 눈빛으로 문성아의 숨이 꺼져가는 걸 지켜봤다. 오직 이준서만이, 문성아가 어릴 적부터 미워하며 가장 험한 말로 내쫓았던 이준서만이 시신을 수습해 주고 묘비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성아야?” 지유란의 목소리가 문성아를 사색에서 끄집어냈다. “듣고 있어?” 문성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손을 파르르 떨었다. “엄마, 결정했어요. 22살 생일 파티가 있는 날 이준서를 내 약혼자로 발표할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귀국하라고 해줘요.” 문성아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흔들림 없는 말투로 말했다. “아... 가능하면 아빠랑 엄마가 직접 다녀오는 게 좋겠어요. 쉽게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요.” 지유란은 그런 문성아를 살짝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딸의 요구라면 다 들어주는 편이라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내일 바로 너희 아빠와 스위든으로 가마.” 전화를 끊은 문성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드레스룸 서랍을 열자 안에는 네 개의 정교한 선물함이 들어있었다. 하나는 안도혁이 준 다이아몬드 목걸이, 하나는 정사언이 준 한정판 손목시계, 하나는 하은수가 준 경매급 그림, 마지막 하나는 맞춤 제작한 향수였다. 전부 값비싼 선물이었지만 전부 전생의 거짓말을 담고 있었다. 정원으로 걸어 나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혁 오빠...” 소유희가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곧 있으면 아가씨 22살 생일인데 오빠를 좋아하니까 무조건 오빠를 선택할 거예요. 곧 유부남이 될 텐데 그러면 더는 오빠와 만날 수 없어요. 아가씨가 공부할 수 있게 후원도 해줬는데 그동안 아가씨 몰래 오빠의 사랑을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해요.” 소유희가 고개를 푹 떨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유성 그룹 후계자인데 나는 고작 문씨 가문의 후원을 받아야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가난한 학생일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관계는 잊어줘요...” 문성아가 멈칫했다. 멀지 않은 곳에 네 남자가 소유희를 에워싸고 선 게 보였다. 안도혁이 어두운 표정으로 소유희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내 허락 없이 어딜 떠나? 문성아가 나를 선택한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뿐이야. 걱정하지 마. 나를 선택한다면 결혼식 전날 비행기 사고를 낼 거야. 모든 걸 버리고 너와 이곳을 떠나면 돼.” “유희야, 걱정하지 마.” 정사언이 부드럽게 손수건을 건넸다. “두 사람이 이곳을 떠나면 우리가 문성아를 잡아둘 거야. 절대 두 사람 찾아내지 못하게.” 하은수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 그러니까 아무 걱정말고 도혁과 이곳을 떠나.” “유희야. 우리가 있는 한 너는 두려워할 거 없어.” 강지환이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도...” 소유희가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가씨가 알면 슬퍼할 거예요.” 네 남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는 너만 신경 써. 문성아는 죽든 말든 상관없어.” 나무 뒤에 숨은 문성아는 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잡은 것처럼 너무 아팠다. ‘그래. 저들이 내 생사를 신경 쓸 리가 없지.’ 이 말은 전생에 겪어봐서 잘 알았다. 문성아는 아무 표정 없이 선물함을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하이힐이 조약돌에 부딪치며 상큼한 소리를 냈다. “아가씨?” 눈이 휘둥그레진 소유희가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 “어... 어쩌다 여기에...” 문성아는 그런 소유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쓰레기 버리러.” “제가 도와드릴게요.” 소유희가 손을 내밀어 받았다. “문씨 가문에서 대학에 갈 수 있게 후원해 줬는데 어떻게든 그 은혜를 갚아야죠.” “필요 없어.” “아가씨. 그냥 제가 할게요...”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소유희는 발을 삐끗하고 말았다. “아악.” 소유희는 비명을 지르며 문성아의 팔을 잡고 옆에 있는 수영장에 빠졌다. 차가운 물이 머리를 덮치자 수영을 못하는 문성아는 어떻게든 물 위로 떠오르려고 발버둥쳤다. “살려줘...” 지켜보던 남자들이 동시에 수영장으로 뛰어들었지만 누구도 문성아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문성아는 그들이 앞다투어 소유희를 향해 헤엄쳐 가는 걸 보며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물이 코로 들어오는 순간 안도혁이 소유희를 수영장에서 안고 나가는 게 보였다. 정사언이 외투를 벗어 소유희에게 덮어주자 하은수가 소유희에게 심폐소생술을 했고 강지환이 급하게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도혁이 소유희의 턱을 잡고 입에 힘껏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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