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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 버리지 말아요

유정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이영을 눕힌 뒤 옆에 서 있는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가서 얘기하죠.” 조금 전의 온화했던 목소리와 달리 단호하고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이 병실을 나가고 강이영은 문밖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대화를 희미하게 들었다. “...역행성 기억상실... 해마 일시적 기능 장애...” “...처음 본 사람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고... 환자를 자극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합니...” 대화는 약 5분 정도 이어졌다. 그동안 강이영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으나 머릿속에 두꺼운 뿌연 안개가 덮인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병실 문이 열렸을 때는 유정한 혼자였다. 그는 침대 앞에 우뚝 서서 강이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마치 그녀를 통해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 복잡해 보였다. “네 이름이 뭔지는 기억나?” 강이영은 기억을 더듬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눈을 깜박이며 유정한을 보다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나 기억이 안 나요.” 유정한은 강이영이 자꾸만 자신을 ‘여보'라고 부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네 이름은 강이영, 나이는 스물둘이야. 난 유정한이고.” 이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나이는 서른둘이야.” 강이영은 눈을 깜박였다. 남편이 무려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잘생기고 다정한 데 당연히 나이를 신경 쓸 리 없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네, 기억했어요. 제 이름은 강이영, 남편 이름은 유정한. 둘 다 예쁜 이름이네요.” 유정한은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손목시계를 흘끗 보고 다시 차갑고 차분한 목소리로 강이영에게 말했다. “난 할 일이 있으니까 넌 푹 쉬고 있어. 저녁 즈음에 다시 올게.” 그가 떠난다는 말에 강이영은 곧바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여보, 가지 말아요. 나 무서워요.” 유정한은 고개를 떨궈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보았다. 둥글게 잘 다듬어진 손톱은 건강한 분홍빛을 띠고 있어 그의 짙은 색 정장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옷자락을 빼냈다. “병원은 안전해. 의사와 간호사가 24시간 대기 중이니까 무서워할 것 없어. 그리고 이 비서가 밖에 있을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벨을 눌러.” 말을 마친 유정한은 몸을 돌려 떠나려 했고 이틀 동안 시간을 너무 지체했던지라 오늘의 중요한 회의는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그러나 문손잡이에 손을 대자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정한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강이영이 이불을 꼭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여보, 내가... 기억 잃어서 싫어진 거예요...?” 강이영은 서럽게 울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이불 끝을 꼭 물고 있는 모습은 마치 폐라도 끼칠까 봐 두려운 듯 흐느낌마저 억눌러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보는 사람마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유정한은 문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강씨 가문의 딸이 왜 이렇게 여린 거야!; 눈을 질끈 감았다가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강이영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코끝과 눈가가 빨갛게 물든 채 말했다. “여보... 내가 얼른 기억 떠올려 볼게요...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말아요...”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앉더니 아주 가볍게 쓰다듬었다. “울지 마. 안 갈게.” 말을 마친 유정한은 핸드폰을 꺼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 시 회의를 온라인으로 바꿔요.” 이내 멈칫하다가 강이영의 눈이 반짝이는 걸 발견하고는 덧붙였다. “그리고 내 노트북을 병실로 가져와요.” 강이영은 금세 눈물을 거두고 웃으며 사탕을 받은 아이처럼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더니 팡팡 두드렸다. “여보, 여기 앉아요!” “가만히 누워 있어. 자꾸 움직이지 마!” 유정한은 옆자리를 팡팡 두드리는 강이영을 무시하고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자 정장 바지가 다리에 딱 맞게 붙으며 완벽한 다리선을 드러냈다. 햇살이 블라인드를 통과해 그의 몸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윤곽을 더욱 날카롭게 부각하고 있었다. 그는 성가신 듯 정장 재킷의 단추를 풀었고 깔끔한 흰 셔츠와 은빛의 넥타이핀이 햇살 아래서 차갑게 빛났다. 곧 유정한의 비서인 주석훈이 노트북을 들고 병실로 급히 들어왔고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나가려고 했으나 무심코 강이영의 얼굴을 보고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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