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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여보, 벗겨 줘

키보드를 두드리던 유정한의 손가락이 갑자기 멈추었지만 강이영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침대 위에서 두 팔을 벌려 안아 달라는 제스처를 했다. 한 치수 큰 환자복이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희고 고운 어깨가 드러났고 흐트러진 머리칼은 부스스하게 솟아 있었다. “대, 대표님...” 재무이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지금...” “회의 잠시 중단하죠.” 유정한은 회의를 종료하고 무표정하게 노트북을 덮었다. 이내 고개를 돌려 멍한 표정의 강이영을 보다가 이를 빠득 갈았다. “너...” 강이영은 그제야 상황을 깨달으며 말했다. “혹시... 제가 사고 친 거예요?” 유정한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고 그때 미래 그룹 임원 단톡방은 난리 나고 말았다. [재무팀 이진수: 세상에! 대표님이 비밀리 결혼했다고요? 드디어 우리에게도 사모님이 생겼군요!] [마케팅팀 김훈: 다들‘여보'라고 부르던 소리 들으셨죠? 마침 영상 기록하고 있었는데 제 노트북에 저장되었어요!] [비서팀 장은지: 다들 조용히 하세요! 외진 곳으로 발령받고 싶어서 그래요?] ... “괜찮아.” 유정한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몸을 숙여 벨을 눌렀다. “간병인 불러줄 테니까 같이 가.” 강이영은 작은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난 당신이 가줬으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나, 낯선 곳이라 무서워서 그래요...” 유정한은 잠시 침묵하다가 불쑥 몸을 숙여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강이영은 무의식적으로 유정한의 목을 감싸 안았고 와이셔츠 너머로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이번 한 번뿐이야.” 유정한은 차가운 얼굴로 화장실을 향해 걸었지만 귓불은 이미 다소 붉게 들어 있었다. 강이영은 그런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남몰래 웃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무래도 보기보다 그렇게 차가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유정한은 강이영을 안은 채 화장실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변기 위에 앉혔다. 막 돌아서려는 순간 강이영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여보...” 그녀는 고개를 들어 촉촉한 눈망울로 유정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옷 좀 벗겨줘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유정한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 “하지만 손이...” 강이영은 서럽게 오른손을 들어 보여주었다. 수액 바늘 자국이 팔은 물론이고 손에도 있었고 전부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게다가 왼팔은 깁스한 상태였다. “이쪽도 다쳐서 팔이 안 올라가요...” 유정한이 가만히 서 있는 걸 본 강이영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우린 부부잖아요. 옷 대신 벗겨주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요...?” 강이영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아니면... 내가 싫어진 거예요?” 유정한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쉰 후 기계적으로 몸을 돌려 눈을 감은 채 환자복의 허리춤을 더듬었고 손끝이 우연히 그녀의 허리에 닿자 따듯하고 매끄러운 감촉에 숨이 멎는 듯했다. “여보, 손이 너무 차가워요...” 강이영은 작게 중얼거렸다. 유정한의 관자놀이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이를 악물며 이 고역을 끝냈다. 천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바로 몸을 돌려 성큼성큼 화장실에서 나가려다가 반쯤 열린 문에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다 끝나면 불러.” 남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있었던지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화장실 문이 쾅 닫혔다. 강이영은 흔들리는 문짝을 보며 남몰래 작게 웃어버렸고 부끄러워하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게 느껴졌다. 한편 문밖에서 유정한은 창가로 다가가 단숨에 생수 두 병을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 갔지만 몸속에서 치솟는 뜨거운 열기를 꺼트리지는 못했다. 그는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다가 문득 자신이 열 살이나 어린 여자한테 반응했다는 걸 깨달았다. 더 무서웠던 건 강이영이 촉촉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며 나른하게 ‘여보'라고 부를 때마다 그는... 부끄럽게도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여보...” 화장실 안에서 강이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됐어요...” 유정한은 눈을 감았다 뜨며 다시 물병을 열어 벌컥벌컥 마시고는 빈 병을 쓰레기통에 가차 없이 던졌다. 그러면서 이를 빠득 갈며 속으로 욕했다. ‘심은성, 이 자식. 내 눈에 띄기만 해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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