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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화영아, 이젠 널 보내주러 왔다.” 엄동설한, 창밖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감옥 안, 앙상해 보이는 여인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옷은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몸은 성한 곳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검붉은색의 피가 말라붙어 딱지가 앉았다. 죽은 이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는 여인의 빨갛게 붓고 메마른 눈동자에는 오직 강렬한 증오만이 남아 있었다. 입을 연 사람은 여인의 사촌 언니인 송연정이었다. 그녀는 매우 깔끔해 보이는 봉황이 수 놓인 화려한 의복을 입고 있었고, 평소와 달리 귀한 봉관을 쓰고 있어 평소보다 덜 속돼 보이는 동시에 오만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심화영은 고개를 들어 송연정을 살펴보다가 잠시 뒤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제발 후작 댁의 사람으로 받아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언니는 갈 곳 없던 처량한 신세였지요.” 심씨 가문에서는 송연정을 14년간 보살펴주었고 심화영은 송연정의 자궁한을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송연정은 결국 뒤통수를 쳤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 약을 떠돌이 개에게 주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언니에게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심화영의 시선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송연정의 복부로 향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서 증오가 더욱 강렬히 불타올랐다. 심화영은 송연정을 친자매처럼 여겼지만 송연정은 심화영이 연모하던 삼황자와 통정하고 그의 아이를 가지더니 계략을 써서 그녀의 가족들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심화영은 죽도록 후회되었다. “이미 늦었단다. 화영아.” 송연정은 심화영의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 “폐하께서 운명하신 뒤 황자 전하께서 즉위하셨고 심씨 가문은 희생양이 되었지. 그리고 오늘 아침, 심씨 가문 사내들이 능지처참을 당하여 흘린 피가 단두곡에 쌓인 눈을 온통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네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뭐라고 하셨습니까?” 심화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문 쪽으로 달려갔다. 심화영은 삼황자 원태영을 7년간 사랑했고 그와 혼인하기 위해 명양왕 전강훈과의 혼약을 깨뜨렸다. 그 일로 그녀와 큰 오라버니는 원수가 되었고 적모는 그녀 때문에 화병으로 피를 토했다. 그렇게 심화영은 15살에서 22살이 되었다. 그러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삼황자는 즉위 후 송연정과 혼인했을 뿐만 아니라 심씨 가문이 선제를 해쳤다고 누명을 씌웠다. 심화영은 두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선 채 쉰 목소리로 말했다. “왜입니까? 대체 왜 심씨 가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까?” “아바마마께서 독살당하셨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기엔 심씨 가문이 가장 적합했지.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 약을 만든 사람은 네가 맞지 않으냐?”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원태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송연정의 옆에 선 뒤 시선을 내려뜨려 심화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네가 짐을 도와 명양왕을 제거한 것을 생각하여 심씨 가문 여인들의 목숨은 살려두었다. 네 언니와 네 동생, 네 어머니까지 총 36명 모두 관기가 될 것이다. 비록 후작 댁에 있을 때처럼 부귀영화를 누리기는 힘들겠지만, 북쪽 땅으로 유배되어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심화영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눈앞의 사내가 자신이 7년간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한 사내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전하께서는 양심이 없는 것입니까? 제가 그 약을 만든 이유는 폐하를 독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약은 원태영이 자기 몸을 지킬 수 있게끔 하려고 만든 약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증거로 삼아 심씨 가문을 파멸시켰다. 심화영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를 느끼며 그에게 따져 물었다. “전하의 어머니가 독에 당했을 때 치료해 준 사람은 저입니다. 명양왕이 황자 전하를 노렸을 때 전하를 위해 그자의 두 다리를 망가뜨린 것도 저입니다. 전하가 다른 이에게 태자를 독살했다고 지목당했을 때 저는 전하 대신 그 죄를 감당했습니다. 전하께서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문책당할 때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전하의 편을 들어주었고 그 덕분에 전하는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전하께서 다른 이의 칼에 맞을 뻔했을 때 저는 전하 대신 그 칼을 맞았습니다. 제가 아니었다면 전하는 이미 명양왕 때문에 단두대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심화영은 사력을 다해 울부짖었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억울함과 후회, 증오가 치솟아 오르는 걸 느끼며 또박또박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저는 명양왕과 혼인하여 짐승보다도 못한 두 사람을 죽였을 것입니다!” 원태영은 마치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안색이 돌변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냉정함을 되찾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전강훈의 상대가 되지 못했겠지. 하지만 화영아, 이미 늦었단다. 전강훈은 이미 오래전 두 다리를 잃었고 이젠 눈까지 멀어 장님이 되었다. 결국엔 짐이 이겼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심화영은 순간 심장이 꿰뚫린 것 같은 고통이 느껴져 숨을 쉬기가 벅찼다. 그녀의 기억 속 전강훈은 아름다운 눈매와 긴 속눈썹, 뭇별이 반짝이는 밤하늘과 같은 눈동자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심화영을 바라볼 때면 영원히 보답받지 못할 애정을 눈동자에 잔뜩 담은 채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그를 싫어했을 때도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는 눈동자였다. 그러나 이젠... 원태영은 자리를 떴고 심화영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전강훈의 모습이었다. 사람 보는 안목이 없던 심화영은 전강훈과의 혼약을 깨뜨리고 삼황자를 도와 그를 해쳤다. 7년 전, 심화영이 자신을 향한 전강훈의 애정을 이용하여 그를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전강훈이 원태영의 함정에 빠져 두 다리를 잃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태영은 절대 전강훈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당시 심화영은 전강훈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그저 원태영에게 잘 보여서 하루빨리 그의 비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심지어 보름 전, 전강훈이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서신을 써서 빨리 떠나라고 했을 때 심화영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는 전강훈에게 자기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자기는 곧 삼황자와 혼인하게 될 테니 죽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죽도록 후회되었다. 송연정은 괴로워하는 심화영의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끼면서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자가 어쩌다가 눈이 멀었는지 알고 있느냐? 네가 붙잡혔던 그날, 나와 폐하는 어떻게 해야 그자를 완전히 망가뜨릴지 의논했었다. 그러다 폐하께서 그자에게 말하셨지. 너를 풀어줄 수는 있으나 그러려면 반드시 직접 자신의 두 눈을 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심화영은 가슴이 미어졌다. 송연정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눈물까지 흘리며 과장되게 말했다. “그저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자는 정말로 자신의 두 눈을 찔렀단다. 하하하, 정말 웃겨 죽을 뻔했다. 하하하!” 그러다 송연정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심화영을 마구잡이로 때리면서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전강훈이 천박한 너를 그렇게 감싸고 도는 것이냐? 전부 너 때문이다. 너 때문에 전강훈이 그 꼴이 된 것이다!” 심화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송연정이 좋아하던 사람이 다름 아닌 전강훈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밖에서 갑자기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영 낭자!” 심화영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철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강훈이 불구가 된 다리를 끌고 처참한 모습으로 그녀를 향해 기어 오고 있었다. 심화영은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한때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천하를 주름잡던 사내가, 황제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던 사내가 그녀 때문에 이토록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 그의 두 눈을 가린 흰 천은 붉게 물들여졌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문밖에 있던 병사는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발로 머리를 차면서 그의 존엄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러나 전강훈은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이 송연정을 향해 외쳤다. “송연정, 날 때리거나 죽여도 좋으니 화영 낭자를 풀어주거라!” 정신을 차린 송연정은 질투와 증오로 가득 찬 눈빛을 해 보였다. “저자를 죽을 때까지 매우 쳐라!” 송연정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전강훈을 때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폭력에 바닥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전강훈은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도 심화영에게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 “화영 낭자...” 심화영은 심장이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을 느꼈고 결국 더는 견딜 수 없어 울면서 애원했다. “제발, 제발 때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 “화영 낭자!” 앞에 있던 사내는 살짝 당황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애타게 불렀다. 심화영이 자신을 위하여 사정할 줄은 생각지 못한 듯했다. 멀어버린 그의 두 눈이 심화영에게로 향하자 한 병사가 그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안 돼!” 심화영은 미친 듯이 철창을 두드렸다. 마지막으로 한 병사가 몽둥이로 그의 머리를 내려쳤을 때, 전강훈은 피범벅이 된 얼굴로 쓰러지며 심화영을 향해 버석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영 낭자, 울지 마시오...” 그렇게 얘기한 뒤 더는 버티지 못하고 툭 쓰러졌다. “아아아!” 심화영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에 필사적으로 철창으로 달려들었다. “송연정, 반드시 죽여주마!” 묵직한 철문이 심화영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열렸다. “마마를 지켜야 한다!” 호통 소리와 함께 검날이 번뜩였다. 그 순간 심화영은 자신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각도에서 본 전강훈은 늘씬하고 어깨가 넓어서 보고 있으면 안전감이 들었다. 그렇게 굳세고 듬직한 사내가 그녀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 심화영은 부디 다음 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녀는 절대 전강훈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그녀의 가족들과 친우들을 해친 자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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