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현우가 바깥에서 카나리아를 한 마리 들여놓고 키운다고 소문이 났다. 그 카나리아를 위해 그는 호화로운 별장도 아낌없이 쓰고 전용 기사까지 붙여 다닌다고 떠들어댔다.
심지어 약혼녀인 최다인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고 술자리에서 대놓고 홍시아 대신 흑기사로 나서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몇몇 절친들은 돌아가며 전화해서 최다인에게 하루라도 빨리 공현우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최다인은 절친들의 충고를 대수롭지 않게 대충 답을 흘리며 문틀에 기대어 공현우가 자신을 위해 갈비탕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냄비 속 갈비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그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다정했다.
“다인아, 너도 알잖아. 내가 홍시아한테 잘해주는 건 다 보여주기식이야. 연기라고. 그래야 내가 홍시아를 감금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거든.”
“조금만 더 버티면 돼. 홍시아가 홍재 그룹 지분을 내놓는 순간 내가 그 인간들을 전부 감옥으로 보내줄게.”
최다인은 공현우가 자신에게 거짓말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5년 전, 공우 그룹이 오랫동안 협력을 유지해 오던 홍재 그룹 측에 배신을 당해 회사가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고 공현우의 아버지는 결국 약을 삼켜 스스로 생을 끊었으며 어머니는 병실 앞에서 울다가 실신해 버렸다.
모든 걸 잃은 공현우는 결국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었고 그때 그의 손을 붙잡아 끌어올렸던 사람은 바로 최다인이었다.
그 후 수많은 밤낮을 보내며 최다인은 허름한 월셋집에서 다시 시작하는 그를 곁에서 묵묵히 지켰고 그가 무너지려는 때마다 옆에서 괜찮다며, 믿는다며 힘을 돋아주고는 했다.
마침내 그들은 재기하는 날을 맞았고 최다인에게 맞선을 강요하던 날 공현우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녀의 명의로 바꿔 넘겼다.
그러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약혼을 의미하는 반지를 최다인의 약지에 끼웠다.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믿는 사이였다.
그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며 최다인을 현실로 끌어냈다. 과태료 문자가 떠 있었다.
[11월 30일 22:30]
[차량이 클라우드 빌리지 입구, 주차금지구역에 4시간 7분간 주차되었습니다. 즉시 이동을 바랍니다.]
최다인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클라우드 빌리지는 홍시아가 사는 곳이었다.
이틀 전 밤, 공현우는 그녀에게 술자리가 있다고 했고 출장 중이던 최다인은 그에게 영상 통화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태료 문자는 그가 그날 밤 홍시아의 집 앞에 네 시간 넘게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공현우는 그녀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다가와 과태료 내용을 보더니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이때는 내가 홍시아랑 지분 이전 조건을 논의한 거야.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사람이었더라고.”
“그런데 설마 이 정도까지 치밀할 줄은 몰랐어. 일부러 과태료 내게 유도하고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작정일 줄은 몰랐네.”
최다인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잠시나마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내가 왜 공현우를 의심했던 거지?'
예전에 최다인의 부모님이 약혼을 반대했을 때도 공현우는 그녀의 집 앞에서 하룻밤을 꼬박 지새우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약혼 후에는 그녀를 위해 그토록 꺼리던 정신과에 직접 방문해 상담까지 꾸준히 받았다.
복수를 위해 홍시아와 접촉할 때조차 회사와 집 CCTV를 그녀가 언제든 확인할 수 있게 전부 설정해 두기도 했다.
최다인이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공현우는 홍시아를 향한 분노를 억누르며 흘러내린 잔머리를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이런 비열한 수단에 네가 흔들리게 만든 건 내 잘못이야.”
이 말을 한 후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겉옷을 집어 들었다. 그의 안색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당장 가서 확실하게 혼내줘야겠어.”
최다인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나도 같이 가.”
공현우는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몸을 굽혀 그녀의 이마에 따뜻한 입맞춤을 남겼다.
“자기야, 자기는 집에서 기다려. 난 우리 자기가 그딴 여자 때문에 기분 망가지는 게 싫어.”
그가 떠나자 집은 금세 조용해졌다.
최다인의 가슴에 맺혔던 답답함은 어느새 따스함으로 바뀌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샤워까지 한 뒤 거실에서 그를 기다리려던 순간 소파 위에 있는 공현우의 업무용 핸드폰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아무래도 아까 너무 급하게 나간 탓에 깜빡하고 놓고 간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차를 몰아 홍시아의 별장으로 향했다. 벨을 누르려던 순간 최다인은 안에서 들려오는 공현우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요물, 굳이 이틀 전에 날 꽉 붙잡고 늘어져서 네 시간 넘게 괴롭히더니. 봐, 하마터면 다인이한테 들킬 뻔했잖아.”
이어서 들려오는 홍시아의 목소리는 아주 나른하고 요염했다.
“그 여자가 알면 뭐 어때서?”
최다인의 손가락 마디가 차가운 초인종 위에 닿은 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공현우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난 아직 최다인이 내 곁을 떠나게 할 순 없어.”
“최다인은 내가 힘들었던 시절에 유일하게 내 곁에 남아 준 사람이야. 나랑 여기까지 오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내 아내도 최다인 하나뿐이야.”
홍시아는 일부러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도발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러면... 나는? 넌 평생 이렇게 나한테 ‘복수'만 할 생각이야? 내 삶도, 내 회사도... 그리고 내 몸까지 소유하면서?”
공현우는 벌주듯 홍시아의 쇄골에 잇자국을 남기고 몇 초 후에야 입을 뗐다.
“이게 네가 날 배신한 대가야.”
격렬한 분노와 쓰라림이 한꺼번에 밀려와 최다인의 이성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공현우가 말한 ‘혼내주기'란 이런 의미일 줄은 전혀 몰랐다. 홍시아에 대한 ‘통제'니‘복수'니 하는 건 전부 거짓이었고 오히려 이건 애정 놀음에 더 가까웠다.
피가 거꾸로 치솟는 기분에 문을 박차고 들어가 공현우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었다. 오랜 세월 자신을 속여 바보로 만든 게 그렇게 재미있었냐고.
하지만 홍시아의 목소리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그럼 말해봐. 너 정말 나한테 원망하고 욕망밖에 없는 거야?”
옷이 스치는 소리가 이어지고 공현우가 비웃듯 말했다.
“왜, 설마 나한테서 사랑이라도 바라는 거야? 꿈 깨. 나 다음 달이면 다인이랑 결혼해.”
“그리고 너 같은 건 나 말고 누가 감당하겠어? 내가 결혼한다고 널 놓아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평생 네 발목 잡고 세상 밖으로 못 나오게 할 거니까!”
그는 심지어 이렇게 홍시아와 얽힌 채 평생을 그녀에게 숨기려 했던 것이다.
최다인은 분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더니 화면에 공현우의 일상용 핸드폰 번호가 떴다.
[자기야, 회사에 급한 회의가 생겨서 오늘은 못 들어갈 것 같아. 오늘도 사랑해.]
그리고 거의 동시에 안쪽에서는 홍시아의 참는 듯한 신음이 들려왔다. 심지어 아까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소리도 컸다.
최다인은 자신의 핸드폰에 뜬 ‘사랑해'라는 세 글자를 바라보며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충격과 분노가 가시자 마음속에는 오히려 결연함과 침착함이 자리를 잡았다.
이내 녹음 앱을 열고 다소 떨리는 손으로 안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