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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오후 두 시, 공현우는 예약해 둔 웨딩숍으로 최다인을 데려갔고 전시된 드레스를 둘러보다가 한 벌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거 한번 입어 봐.” 매끈한 새틴과 머메이드 라인, 허리까지 깊게 파인 라인... 그녀의 옷장 속 그 몇 벌과 똑같았다. 최다인은 그것을 받지 않았고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한 매장 안에 유난히도 또렷하게 울렸다. “난 이런 거 안 좋아해.” 그러자 공현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고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전에는 좋아했...” 최다인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난 한 번도 좋아한 적 없어.” 공현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입술이 움직였으나 끝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매장 문이 열리고 연한 슈트 차림의 홍시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공현우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어머,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은 몰랐네, 현우야. 나도 드레스 보러 왔어.” 홍시아의 시선이 최다인에게로 향했다. “이 분이 최다인 씨지? 네가 말하던 그대로네. 참... 뭐랄까, 온순하고 단정하시다.” 마지막 말의 어미가 유난히 길게 끌렸다. 최다인은 그 말 속에 숨은 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홍시아의 입에서 나온 온순하고 단정하다는 말은 줏대가 없고 다루기 쉬우며 집에 두기 딱 좋은 인형이라는 의미를. 최다인이 말하기도 전에 공현우가 한 걸음 나서며 둘 사이를 막았다. “홍시아, 여기서 시비 걸지 마.” 홍시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눈길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뭐야, 공 대표님. 왜 이렇게 화를 내. 나도 드레스 고르러 온 건데, 안 돼?” 그러고는 공현우 손에서 최다인이 거절했던 머메이드 드레스를 빼앗듯 가져가 거울 앞에 대보았다. “이 드레스 꽤 괜찮네.” 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그대로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공현우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이내 그는 최다인에게 조금 부드럽게 말했다. “다른 데로 가자, 여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피팅룸에서 홍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우야, 지퍼에 손이 안 닿아. 와서 좀 도와주면 안 될까?” 공현우의 몸이 굳었다. 무의식적으로 최다인을 바라봤다. 최다인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장 발을 들어 피팅룸으로 걸어가 커튼을 열고 들어갔다. 홍시아는 등을 돌린 채 서 있었고 드레스는 반만 올라간 상태였다. 하얀 등에 새로 생긴 자국들이 조명 아래 선명했다. 그건 지난밤 최다인과 공현우가 남긴 흔적이었다. 홍시아는 돌아서서 최다인을 보더니 우월한 미소를 띠고 낮게 말했다. “위기감 느껴져요?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요. 현우가 그쪽을 좋아하든 말든 그쪽을 아내로는 맞을 거니까요. 그쪽은 그냥 ‘아내감’이고, 나는...” 최다인이 말을 끊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요?” 생각과 다른 반응에 홍시아가 멈칫했다. 최다인은 그녀 뒤로 가 지퍼를 잡고 힘을 줘 끌어올렸다. 갑작스레 조여든 드레스가 홍시아의 허리를 꽉 조였다. “윽!” 최다인은 귓가에 가까이 속삭였다. “홍시아 씨, ‘공현우 아내’라는 타이틀... 나한테는 제일 하찮은 거예요.” 홍시아의 몸이 굳었다. 최다인은 계속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내 손에는 공우 그룹 지분 51%가 있어요. 작년에 상장하면서 전부 내 앞으로 넘어왔죠.” 딸깍. 지퍼가 끝까지 닫혔다. 최다인은 한발 물러서서 거울 속 홍시아의 커진 동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5년 전 홍재 그룹이 공우 그룹의 영업 기밀 훔친 증거도 확보해놨어요. 원본은 변호사에게 있고 사본은 언제든 검찰에 넣을 수 있죠.” 그녀의 말을 들은 홍시아는 안색이 점차 창백하게 변했다. 최다인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정리해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요. 이런 유치한 장난 그만하고.” 최다인은 그렇게 말하고 피팅룸을 나섰지만 홍시아는 등골이 서늘해진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공현우가 다가와 물었다. “홍시아가 뭐라고 하진 않았지?” 최다인은 아주 평온하게 말했다. “아니. 그냥 지퍼가 걸려서 도와준 거야.” 공현우는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됐어. 계속 구경하자.” 이어진 한 시간 동안 공현우는 눈에 띄게 집중하지 못했다. 드레스를 들어 의견을 묻다가도 시선은 늘 피팅룸으로 향했다. 최다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몇 벌을 입어본 뒤 가장 단순한 A라인 드레스를 골랐다. 머메이드도, 새틴도 아니고, 뒤도 단정히 가려진 드레스였다. 직원이 포장을 하러 간 사이 피팅룸에서 비명이 들렸다. 공현우는 생각할 틈도 없이 달려가 커튼을 확 젖혔다. 홍시아는 심장을 움켜쥔 채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숨은 가쁘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공현우는 조심스럽게 홍시아를 부축하며 최다인은 들은 적 없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 홍시아는 힘없게 말했다. “심장이... 너무 아파...” 공현우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구급차를 불렀다. 그의 손가락은 떨렸고 주소를 말하다가 혀를 깨물 뻔할 정도였다. 최다인은 몇 걸음 떨어져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3년 전의 밤이 떠올랐다. 그를 위해 술을 마시다가 위출혈이 와 밤중에 몸을 떨며 그에게 전화했던 그날을 말이다. 그는 회의 중이라며 금방 돌아올 거라 했지만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건 배달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위약을 배달로 주문해 주며 알아서 꼭 챙겨 먹으라던 그 차갑게만 느껴지던 문자. 그때는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일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 그녀는 알았다. 그는 그저 그녀의 고통에는 그만큼 관심이 없었던 거라고. 구급차는 금세 도착했다. 의료진이 들것을 들고 들어오자 공현우는 계속 홍시아의 손을 잡은 채 함께 나갔다. 차 문이 닫히기 직전 그는 뒤돌아 최다인을 보며 말했다. “다인아, 너 혼자 돌아가. 난 홍시아랑 병원에 갈게.” 최다인은 길가에 서서 구급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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