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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장현우와의 통화를 끝낸 뒤, 온지아는 가슴이 뛰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뒤척이다 결국 이불을 걷어차고 곧장 방을 정리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 집에서 함께한 3년, 그녀의 주변에는 온통 심주원의 흔적이 깔려 있었다. 책상 위에는 그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침대 옆 서랍에는 그가 선물했던 액세서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떼어낸 뒤, 망설임 없이 전부 문서 파쇄기에 밀어 넣었다. 한때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가 준 옷, 가방, 보석함조차 더 이상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밤새 짐을 싸며 고민한 끝에, 그녀는 간소한 옷 몇 벌 그리고 도민정이 예전에 선물했던 악기들과 자필 악보 몇 장만을 캐리어 안에 넣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제 진짜로,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 위한 준비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새벽 네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피로가 몰려오고 눈꺼풀이 무거워져 그녀는 거실 불을 끄고 조용히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렇게 겨우 눈을 감았는데 이상했다. 의식이 가라앉기도 전에 누군가의 거친 손길이 자신을 침대에서 끌어 내리고 몸 전체가 어딘가로 눌려 들어가는 감각이 스쳤다. 귓가에는 낯선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흐릿하게 스며들었지만 그 소리가 어디서 흘러오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눈을 뜨려 해도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은 채 들릴 기미가 없었고 몸을 움직이려 할수록 팔다리는 제 것이 아닌 듯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가 목을 죄고 숨이 차올라 결국 눈을 번쩍 떴을 때 세상은 칠흑 같았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물비린내가 뇌를 찌르고 차디찬 물이 입과 코, 심지어 귀까지 들이닥치며 그녀의 폐를 짓눌렀다. 몸을 뒤틀어보니 자신이 커다란 마대자루에 갇혀 물속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가슴을 꿰뚫는 공포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익숙한 절망이었다. 3년 전, 강하늘이 도민정과 자신을 괴롭히던 그날 밤, 강하늘은 그녀를 인공호수에 던져 넣었고 온지아는 하염없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다음 날 청소부에게 구조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반쯤 숨이 멎은 상태였고 의식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지옥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온몸을 꽉 조이는 공포를 억지로 누르며 그녀는 정신을 붙잡았다. ‘아직 장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어!’ ‘아직 강하늘과 심주원 형제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지 못했어!’ ‘아직, 도민정도 찾지 못했는데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얼마 후, 아침 운동을 하러 공원에 나온 노인 몇 명이 그녀를 물속에서 건져냈고 놀란 마음으로 경찰에 신고까지 해주었다. 경찰서에서 진술을 마친 뒤,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집에 돌아오자 거실에서 심주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걔가 3년 전에 하늘이가 사람을 시켜 자기를 호수에 집어 던졌다고 누명 씌웠잖아.” “오늘은 진짜로 그 맛을 보여줘 봤지. 직접 던져졌을 땐 어떤 기분인지.” “어젯밤에 걔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성질부리며 앨범을 다 박살 내놨거든.” 그 말을 들은 순간, 온지아의 온몸은 다시 얼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어젯밤 자신이 심주혁을 거부해서 그가 분노해 그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알았다. 이 모든 걸 주도한 자는 바로 심주원이었다. 3년 동안 그녀가 고통 속에서 청력을 잃고 밤마다 트라우마에 시달릴 때마다 그는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재활을 돕고 손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단지 강하늘의 음반 하나를 깼다는 이유로 그녀를 다시 물속에 던진 것이다. “죽진 않을 거야. 금방 돌아오겠지.” 그가 그렇게 말한 그 순간, 고개를 돌리다 문 앞에 서 있는 온지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아직도 젖은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그 눈동자 속에는 뚜렷한 증오가 번지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한 심주원은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졌다. “온지아가 돌아왔어. 이만 끊을게.” 그는 전화를 서둘러 끊고 다가오며 말했다. “지아야, 어디 갔었어, 나 진짜 걱정했잖아!” 그는 연기하듯 허둥지둥 다가와 그녀를 훑어보며 물었다. “이게 뭐야, 옷이 다 젖었잖아? 혹시 물에 빠진 거야?” 온지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속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분명히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 누가 날 묶어서 공원 호수에 던졌어...” “뭐? 바, 바보 같은 소리 말아. 그게 말이 돼? 너 몽유병 다시 도진 거 아니야? 전에 심리 상담사가 말했잖아. 과거 트라우마가 심하면 무의식적으로 예전의 상처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고...” 그의 연기는 완벽했고 목소리에는 그럴듯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온지아는 고요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몽유병인지, 납치인지 경찰이 곧 알려줄 거야.” 그 말에 심주원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별일도 아닌데 무슨 경찰까지... 좀 오바 아냐?” “내가 다쳤다고. 그건 절대 작은 일이 아니야.” 온지아는 그를 향해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날 다치게 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심주원을 지나쳐 2층으로 올라갔다. 남겨진 심주원은 가슴 속 어딘가가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혹시 온지아가 뭔가 눈치챈 건가?’ 그 순간, 그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습관처럼 웃는 얼굴로 전화받으며 말했다. “하늘아? 왜?”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애교 가득한 여자의 달콤한 목소리였다. “주원 오빠.” “방금 매니저가 새 앨범 곡 작업 진행 상황 물어봤는데 나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직 새 곡 안 나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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