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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안서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더는 이 위선적인 거짓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자리를 뜨려 하자 하승주는 재빨리 따라 일어나 수화를 하며 물었다. “서연아, 무슨 일이야?” 안서연은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좀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쉬고 싶어.” 그러고는 하승주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곧장 방을 나섰다. 도로까지 걸어 나온 안서연은 문득 고개를 들었고 맞은편 오피스 건물 전광판에 떠오른 영상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서연, 나랑 결혼해 줘!] 아홉 글자가 큼지막하게 화면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광판을 보고 감탄을 터뜨렸다. “세상에, 그 얘기 들었어? 하승주 대표 여자 친구가 청각 장애인이라서 프러포즈할 때 시내에서 제일 높은 빌딩 전광판을 통째로 빌렸대. 여자 친구가 ‘결혼해 줘’라는 글자를 직접 볼 수 있게 하려고. 청혼에 성공하고 나서는 그 영상을 한 달 내내 틀어놨다더라. 사람들이 축하해줄 수 있게.” “하승주 대표는 여자 친구를 정말 사랑하나 보다. 결혼하면 분명 좋은 남편이 될 거야.”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안서연은 비웃는 듯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그녀 역시 저 사람들과 똑같았다. 하승주의 사랑을 철석같이 믿었고 그가 좋은 남편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자랐다. 아홉 살 때 고열에 시달렸는데 병원에 제때 가지 못해 청력을 잃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고아원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매일 쏟아지는 악의에 그녀는 마음속에 높고 단단한 벽을 쌓았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앞에 하승주가 나타났다. 하승주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며 맹렬히 구애해 왔다. 하지만 그런 장난은 그녀에게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하승주가 다가오면 피했고 고백하면 모두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진이 일어났다. 하승주는 주저 없이 그녀를 끌어안고 몸으로 감쌌다. 심지어 쇠기둥이 그의 어깨를 관통했음에도 그는 끝까지 그녀를 보호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병원에서 깨어난 뒤, 몸은 여전히 허약했음에도 그가 안서연을 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수화였다. “너만 괜찮으면 돼.” 그녀는 그때 알게 되었다. 그가 그녀와 더 잘 소통하기 위해 무려 석 달 동안 수화를 배웠다는 사실을.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높은 벽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그날 생긴 상처는 아직도 그의 어깨에 선명히 남아 있다. 붉고 둥그런 흉터를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자꾸만 두근거렸다. 그렇게 함께한 5년 동안,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마음을 다했고 그녀는 그 사랑을 믿었다. 하씨 가문이 반대해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그녀에게 청혼까지 했다. 그녀는 결혼식장에서 하승주가 하는 맹세의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 그리고 하승주가 가족과 그녀 사이에서 힘들어하지 않도록 직접 해외로 날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청력 회복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하늘은 그녀의 편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녀는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녀는 결혼식 당일에 이 사실을 깜짝선물처럼 그에게 전할 생각이었다. 그가 얼마나 기뻐할지 이미 수없이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상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우연히 하승주와 그의 여비서가 전화로 다정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들었다. 그 순간, 안서연은 알게 되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 몰래 여비서와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그들의 관계는 무려 1년이나 지속되었고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심장이 조여오는 고통에 그녀는 결국 길가에 쪼그려 앉아 자기 몸을 껴안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까 방에서 하승주가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결혼을 앞두고서도 그는 그 관계를 끝낼 생각조차 없었다. ‘하승주는 내가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평생 마음 놓고 속일 수 있다고 확신한 건가?’ 겨울밤의 찬바람이 옷 속까지 파고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차가움이 그녀의 정신을 더욱 맑게 만들었다. 안서연은 하승주에게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안서연도 결코 거짓말을 참고 넘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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