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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딸 수술비 때문이라면서요? 여기 2억이 있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바닥에 내던져진 카드를 보는 순간, 심가연은 온몸의 피가 한순간에 빠져나간 듯 휘청거렸다. 정신마저 얼어붙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심가연 씨, 이제 선택할 수 없어요.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예요. 내 말 안 따르면 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도은아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그 협박은 심가연의 의지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약점은 이미 그녀 손에 있었고 구진성의 마음은 약혼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심가연에게는 달리 갈 길이 없었다. “알겠어요.” 짧은 대답과 함께 눈을 감았다. 오늘의 굴욕을 삼켜야 내일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도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요. 곧 심가연 씨가 자연스럽게 물러날 구실을 만들어 줄게요.” 그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려 사라졌다. 심가연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발치에 놓인 카드를 집어 들었다.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속으로 다짐했다. 짓밟힌 자존심, 반드시 되찾겠다. 카드를 꼭 쥔 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발길을 옮겼다. 연회장을 스쳐 지나가던 순간, 무대 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진성이 도은아의 손을 굳게 잡고 있었고 구병호는 두 사람의 약혼 소식을 큰 소리로 알리고 있었다. 구진성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러나 그 미소는 심가연의 가슴을 날카롭게 도려내 숨조차 쉬기 힘들게 했다. 눈가를 스친 눈물을 황급히 닦아내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등을 보였다. 그 순간, 마치 기척을 느낀 듯 구진성이 입구 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에 담긴 건 이미 멀어져 가는 익숙한 뒷모습뿐이었다. 오늘 생일잔치에는 경성의 거물들로 가득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구진성은 도은아와 다정한 연인인 척 연극을 이어 가야 했다. 하지만 방금 전 심가연이 내뱉은 차가운 말이 떠올라 속은 끝없이 뒤틀렸다. 그때, 구진성은 또 다른 장면을 보았다. 임준석이 의자에서 일어나 홀 출입구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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