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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막 뛰쳐나가려던 발걸음이 멈췄다. 오늘 자신이 온 이유는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누가 봐도 데이트 중인 듯 보였다. 이 상황에서 억지로 끼어들었다간, 돈은커녕 분위기를 망쳤다고 뼈도 못 추릴 수도 있어 보였다. ‘차라리 몰래 따라가서 둘이 헤어진 뒤에 얘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임다영은 주차장 한쪽에 몸을 숨긴 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연시윤은 등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채, 품으로 달려든 백유리를 내려다봤다. 미간이 서늘하게 찌푸려졌다. 그는 본래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하물며 동생처럼 대했던 백유리의 이런 친밀한 스킨십은 불쾌함만 남겼다. “됐어? 이제 놔.”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시윤 오빠...” 백유리는 살짝 몸을 뗀 뒤, 나긋하게 웃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하죠? 우리 집에 가요. 제가 직접 밥 해줄게요.” “입맛 없어.” 그의 단호한 거절이 이어졌다. 김정숙이 늘 백유리를 연씨 가문의 며느리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연시윤에게 그녀는 그저 아무 느낌 없는 동생일 뿐이었다. “안 돼요. 입맛 없어도 먹어야죠.” 백유리는 애써 웃음을 띠고 애교를 한껏 담아 간드러지게 말했다. “시윤 오빠 목숨은 제가 구한 거잖아요. 이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 되죠.” 그 말에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열 살 무렵, 원한을 품은 사람들에게 납치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날, 총에 맞아 고열에 시달리던 그를 여린 등에 짊어지고 산을 넘었던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가 마을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기에 그는 목숨을 건졌다. 의식이 돌아온 뒤, 연시윤은 연씨 가문 사람들을 시켜 그 소녀를 수소문했고 그 아이는 지금의 백유리였다. 백유리는 그의 표정이 조금 풀린 걸 눈치채고 재빨리 덧붙였다. “혹시 어머니 말씀 때문에 그래요? 괜찮아요. 오빠가 날 동생으로만 본다는 거 알아요. 전 상관없어요.” 연시윤의 어머니, 김정숙은 예전부터 그녀를 연시윤의 아내감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백유리의 온순한 미소를 보던 연시윤의 머릿속에 문득 다른 여자가 스쳤다. 겉으론 순해 보여도, 한 번 반격할 땐 작은 야생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던 여자, 임다영이 떠오르자, 그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젠장, 왜 하필 그 여자가 떠오르는 거지?’ ‘조사만 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더러운 이면을 몰랐을 텐데. 그 모든 게 연기였을 뿐이라는 것도...’ 백유리는 그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자,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오빠, 혹시 제가 어머님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미안해요.” 그러나 연시윤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까, 밥 해준다 했지? 가자.” “정말요?” 백유리는 순간 눈이 반짝였다. 그가 드디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 시윤 오빠!” 백유리가 설레는 얼굴로 그의 팔을 끼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 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대표님, 큰일입니다. 방금 확인했는데... 임다영 씨가 틈을 타 도망쳤습니다!” 연시윤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그는 곧장 백유리의 팔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서서, 경호원의 옷깃을 거칠게 잡았다. “뭐? 분명 내가 지켜보라고 했을 텐데?” 경호원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죽음이 목덜미를 스치는 듯했다. “저희도... 상상도 못 했습니다. 담을 넘어 도망칠 줄이야... CCTV를 돌려보니 벌써 세 시간 전 일이었습니다...” 순간, 연시윤의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경호원의 무릎은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백유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시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임다영 씨가... 누구죠?” 물론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귀국하기 전, 김정숙이 귀띔해 준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다. 연시윤 곁에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뻔뻔하게 시윤 오빠 침대까지 차지하 곁에서 들러붙다니!’ 김정숙은 그 여자가 치료에 필요한 일시적인 존재라 했지만, 백유리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은근히 떠보았다. “목숨이 아까운 줄도 모르는 여자네요.” 연시윤은 이를 악물며 경호원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여자 하나 못 지키는 너희를 내가 왜 두고 있어야 하지?” “대, 대표님! 살려주십시오!” 경호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백유리는 속으로 안도하며 미묘한 우쭐함을 느꼈다. ‘멍청하기는... 감히 시윤 오빠를 이렇게 화나게 하다니, 이제 끝났네.’ 그녀는 애써 부드럽게 거들었다. “시윤 오빠, 이분들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요. 차라리 기회를 주고 임다영 씨를 찾아오게 하세요.” 연시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반드시 찾아와. 땅을 파서라도.” “예! 꼭 찾겠습니다!” 경호원들은 연거푸 대답하며 물러났다. 그들이 떠날 때, 백유리를 향한 시선에는 감사가 어려 있었다. 마치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천사라도 되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백유리는 속으로 비웃었다. ‘이런 것들한테 감사받고 싶어서 도운 게 아니지. 시윤 오빠 앞에서 내 이미지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임다영... 여기 있었네!” 날카로운 고함이 뒤에서 터져 나왔다. 바로 임예진의 목소리였다. 임다영은 순간 얼어붙었다. 설마 이런 타이밍에 임예진이 자신을 찾아낼 줄은 몰랐다.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이 먼저 반응했지만, 불길하게도 검은 양복 차림의 경호원들도 그녀를 발견했다. “대표님! 임다영 씨를 찾았습니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 진짜 이게 무슨 상황이야? 앞에는 늑대, 뒤에는 호랑이... 왜 하필 다 날 찾아내는 거야!’ 임다영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두 걸음도 떼기 전에 그녀는 모퉁이를 돌다가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아니, 부딪힌 게 아니라 그대로 한 남자의 품에 갇혔다. 연시윤이었다. 그는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그녀를 제압하듯 끌어안고 서늘한 목소리를 떨어뜨렸다. “임다영, 감히 또 내 눈앞에 알짱거려?” “그게 아니라, 제 말 좀 들어...” 변명할 틈도 없었다. 순간, 다리가 허공에 뜨더니 그의 어깨 위로 몸이 들어 올려졌다. “놔요! 연시윤, 이거 내려놓으라고!” 임다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높은 곳에 매달린 공포와 그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내던질 것 같은 위압감에 숨이 막혔다. 등을 두드리며 발버둥 쳤다. 그러나 돌아온 건 살벌한 경고뿐이었다. “입 다물고 얌전히 해. 다시 한번 움직이면... 다리부터 잘라버릴 거니까.” 그 한마디에 임다영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고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그녀는 그대로 연시윤의 어깨에 실려 차 안으로 던져졌다. 멀미하듯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은 채 겨우 숨을 고르려던 순간, ‘부웅!’ 엔진이 울리고 차는 곧장 속도를 올렸다. 연시윤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를 태운 차를 몰고 현장을 벗어났다. 한편, 임예진은 골목 끝에서 막혀 더 이상 좇지 못했다. 겨우 빠져나온 뒤 눈에 들어온 건, 차창 넘어 스쳐 지나가는 임다영의 얼굴이었다. ‘말도 안 돼...’ 임예진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 차는 가격만 봐도 범접할 수 없는 고급 세단이었다. ‘임다영이 어떻게... 저런 차에 탈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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