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원하는 게 뭐지?” “그 여자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게 해요. 그거 할 수 있어요?” “임다영, 너...” “못 할 거면 조건 얘기 꺼내지 마요. 듣기만 해도 역겨우니까.” 임다영의 목소리는 전혀 사정없었다. 온몸의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방어적이고 눈곱만큼의 신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이 끝나자마자 분명 연시윤이 또 크게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내 말은 언제나 유효해. 원하면 그때 다시 말해.” 임다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창밖 풍경에만 두었다. 가능하다면 그녀는 연시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임다영은 몰래 손바닥을 배 위에 올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얼굴이 이 순간만큼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해졌다. 하필 그 장면을 연시윤이 정확히 보았다. 그의 얇은 입술이 살짝 다물며 눈빛이 알 수 없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신이 이미 이 여자의 속내를 다 꿰뚫었다고 생각했지만 임다영은 늘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임다영, 넌 도대체 어떤 여자인 거지...’ 검은색 리무진이 천천히 연씨 가문의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임다영이 연시윤을 따라 차에서 내리는 순간 양옆에 늘어선 하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대표님, 사모님 오셨습니까!” ‘사모님?’ 임다영은 그 호칭에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곧이어 남자가 다가오더니 강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뭐 하는 거예요...” 임다영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밀쳐내려 했지만 연시윤은 더 단단히 힘을 주었다. “할머니가 보고 계셔.” 그 한마디에 임다영은 바로 깨달았다. 이건 철저히 연극이었고 그녀는 그저 협조하는 조연일 뿐이었다. 임다영은 이미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있었다. 모든 게 박혜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라면 그냥 참고 넘어가야 했다. 하지만 연시윤의 품은 강압적이면서도 이상하게 든든했고 그의 크고 따뜻한 손바닥이 허리를 감싸니 전해지는 체온에 다리가 저릿하게 힘이 풀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