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연시윤의 눈썹이 매섭게 찌푸려졌다. 임다영의 반응은 여전히 연시윤의 예상을 벗어났고 상상처럼 자비를 구하는 울음소리는 없었고 임다영은 오히려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임다영의 눈빛에는 비장함과 결연함이 서려 있었지만 동시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두 갈래의 불꽃처럼 타올라 연시윤의 심장마저 열기를 느낄 정도였다. 연시윤의 표정에는 망설임이 역력했다. 그때, 연시윤의 전화가 울렸다. “연시윤 씨, 할머님이 깨어나셨어요!” 수화기 너머 의사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던 임다영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했다. “다영은 어딨어? 왜 다영이 안 보이는 거지?” 막 깨어난 박혜자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 녀석, 설마 내가 쓰러져 있는 사이 다영에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지?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임다영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 다급하게 물었다. “시윤 씨, 시윤 씨, 할머니께서 깨셨어요?” 연시윤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임다영을 바라봤다. 임다영은 기대의 눈빛으로 바라봤고 박혜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거짓이 아닌 듯 보였다. “다영 목소리를 들었으니, 당장 다영에게 바꿔줘.” 박혜자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재촉했다. 연시윤은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할머니. 지금 바로 바꿔드릴게요.” 손과 발이 풀린 임다영은 수많은 날을 기다리던 희소식에 설레며 조심스레 전화를 받아 들었다. “할머니, 저예요.” “시윤이 그 자식, 너 괴롭히진 않았지?” 임다영은 자신의 처지를 보니 온몸이 만신창이에 멍투성이였지만 그렇게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행이구나.” 박혜자는 몇 마디 더 묻고 임다영이 무사함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피곤하니 잠시 자야겠어. 너희들 할 일 마치고 다시 오너라.” 전화를 끊은 임다영의 눈빛에는 미묘한 흔들림이 있었다. 죽겠다고 버티던 고집스러움은 어느새 조심스러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시윤 씨, 할머니가 깨어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