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박동진은 갑작스럽게 올라오는 열기에 답답함을 느껴 차창을 내렸다. 밤바람이 쏴 하고 들어오자, 그제야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이때 기사가 물었다. “대표님, 더우시면 에어컨 켤까요?” 머릿속에 막 펼쳐지던 황당하고 은밀한 상상들이 끊기자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박동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낮게 쏘아붙였다. “운전이나 해, 입 닫고.” 창밖 강가 위로는 점점 더 많은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화려하고 눈부신 폭죽들이 밤하늘을 수놓자, 주변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어떤 여자는 감격한 듯 소리쳤다. “만약 누가 나를 위해 이렇게 불꽃놀이를 해준다면 바로 결혼할 거야!” 박동진은 코웃음을 쳤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철없는 소리.’ 그는 송가빈에게 소행성을 선물한 사람이었다. 우주가 존재하는 한, 그 소행성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몇 초 만에 사라져 버리는 불꽃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가치였다. 잠깐 반짝였다 사라지는 불꽃에 눈물까지 글썽인다니 그런 감동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때 벨 소리가 울렸다. 박동진은 핸드폰 화면을 하준우의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큰일입니다. 사모님 지금 호텔에 안 계세요!” 박동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호텔에 없어? 그럼 지금 어딨는데?” 하준우도 다급한 목소리였다. “저도 확실하진 않은데... 프런트 쪽 말로는 정 대표님이랑 점심쯤에 같이 나가셨대요. 그런데 아직까지 안 돌아오셨어요.” 그제야 박동진은 낮에 송가빈이 정찬수와 함께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땐 임수연 문제로 정신이 없던 터라 깊이 묻지 않았는데 낮에 함께 있는 것과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는 즉시 전화를 끊고 정찬수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로 연결됐다. “여보세요?” “찬수야, 지금 어디야?” 정찬수의 목소리는 평온했고 오히려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강가. 불꽃놀이 보고 있어.” “누구랑?” “내 여자 친구랑.” 박동진은 짧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 또 데이트 방해했네.” 정찬수는 비웃듯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