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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3일 뒤, 21학번 컴공학부 동기들이 모였다. 한서영은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주석현도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사람들 중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한서영을 보자마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자 룸 안 공기가 어색하게 굳었다. 한서영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동기들 눈에 그녀가 주석현과 결혼한 건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고 그래서 애초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 하지만 한서영은 그런 시선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조금 뒤, 반장이 큰 종이 상자를 들고 들어와 말했다. “오늘 모인 이유는 두 가지야.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그리고 우리 그때 했던 5년 뒤의 나에게 쓰는 편지. 오늘이 개봉일이라서 같이 열어보자.” 사람들이 상자 앞으로 몰려들며 시끌시끌해졌다. “그럼 한 명씩 랜덤으로 뽑고 읽자!” “오케이, 내가 먼저!” 분위기를 띄우던 남학생이 봉투를 하나 뽑아 들었다. 주변에서 재촉하자 그는 봉투를 뜯고 편지를 펼쳤다. “5년 후의 한서영, 잘 지내니? 지금 나는 햇빛 아래에서 너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어.네가 이걸 읽을 때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지 지금 이 마음이 닿으면 좋겠구나.”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방 안의 소음이 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한서영에게로 향했다. 휴대폰을 만지던 주석현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한서영의 얼굴이, 편지의 내용과 함께 살짝 굳었다. 남학생은 그녀를 힐끗 보며 계속 읽었다. “올해 너는 열아홉이고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주석현을 좋아하게 되었지. 하지만 그사람은 이 사실을 몰라. 아니, 설령 알게 되더라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그 사람에게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너의 마음은 애초부터 끝이 없는 거였어. 너는 물을지도 몰라. ‘그럼 왜 포기하지 않느냐’고. 내가 좋아한 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앞을 향해 뛰던 그 선명한 기세, 저녁 바람 속에서 농구공을 가볍게 막아준 순간의 다정, 거절해야 할 때에도 예의를 놓지 않던 그 태도야. 조회 시간마다 고개를 돌려 몰래 보다가 목이 아팠던 것도 나고 비가 퍼붓는 날 약을 그 사람의 서랍에 넣어두던 것도 나고 일기장에 그 사람의 이름을 밤새 적어 두던 것도 나야. 어쩌면 그 사람은 평생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짝사랑은 원래 한 사람이 감당해내는 혼란이니까.” 편지가 끝나자, 방 안은 숨소리마저 조용해졌다. 주석현의 몸이 잠깐 굳어섰다. 그는 떠올렸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주저 없이 그의 곁으로 걸어왔던 그날의 한서영을. 그제야 그는 알았다. 한서영이 그와 결혼한 건 누가 말하던 것처럼 기회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오랫동안 그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조용했던 그의 심장이 이유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입을 열려던 순간, 소지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석현아, 나 클럽 앞에서 깡패들한테 막혔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주석현은 자리에서 뛰어나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 무리를 보자마자 주먹이 먼저 나갔다. 분노가 실린 손은 거칠고 빠르게 내려쳤고 상대는 금세 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뒤이어 온 사람들이 소지원을 감싸 안았다. 소지원은 울먹이며 문신한 남자가 손을 더듬었다고 말했다. 주석현은 말없이 근처 쇠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손을 내리쳤다. 찢어지는 비명이 번잡한 공기를 갈랐다. 한서영이 도착했을 때, 피가 번진 손과 흐트러진 장면이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고개를 들었지만, 주석현은 이미 소지원을 부드럽게 감싸며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잔혹하던 손길이, 지금은 다정하게 소지원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다정함은 한서영이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던 것이었다. 한서영은 시선을 내려 감정을 가리고 살짝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향했다. 새벽 무렵, 주석현이 돌아왔다. 한서영이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는 걸 본 그는, 뒤늦게 설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 말했다. “서영아 오늘은 동기들이었고... 지원이 일이어서 그냥 모른 척할 수는 없었어.” “응.” 한서영은 조용히 대답하고 잠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반 시간 뒤, 머리를 말리며 나오자 주석현은 한서영의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서영아, 너 왜 비행기표를 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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