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오전 내내 시끌벅적하던 끝에, 소지원이 한턱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주석현은 단호하게 잘랐다.
“됐어.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소지원은 그 말을 듣지 않은 듯 그의 손목을 잡아 문쪽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혹시라도 그가 빠질까 봐, 자연스럽게 한서영까지 함께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일행은 차를 타고 온천리조트로 향했다.
한서영은 원래 그들과 깊게 어울린 적이 없어서 쉽게 섞일 수 없었다.
굳이 끼어들 생각도 없었기에 한쪽 자리에서 조용히 술잔이 오가며 웃음소리가 번지는 분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주석현이 다가와 주스를 따라 건네려 했다.
한서영이 잔을 받으려는 순간,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사람들 사이로 걸어갔다.
마침 소지원이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이 입술에 닿으려 할 때였다.
그는 그 잔을 그대로 빼앗으며 낮게 말했다.
“너 술 알레르기 있잖아. 이러다 진짜 큰일 나.”
소지원은 눈을 한 번 크게 깜박였다.
“주스인 줄 알았어. 그냥 잘못 집은 거라고. 왜 그렇게 화내?”
그녀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주스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고 눈가에 작게 웃음을 띠었다.
“고마워.”
그 짧은 말에 주석현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가 앉아 손에 남아 있던 잔을 한서영에게 건넸다.
잔 속의 짙은 황금빛 술이 조용히 흔들렸다.
한서영은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나 술 안 마셔. 먼저 온천 다녀 올게.”
그제야 주석현은 자신이 잔을 잘못 건넸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머릿속이 온통 소지원 생각뿐이었으니까.
해명하려 했지만, 한서영의 발걸음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따뜻한 온천물은 한서영의 긴장을 천천히 풀어 주었다.
그녀는 흰 김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지만 소란스러운 환경에 익숙해진 탓인지 듣지 못했다.
대답이 없자, 주석현은 마음이 급해져 문을 밀고 들어갔다.
잠든 그녀를 보는 순간, 그의 심장이 크게 울렸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끌어안아 올렸다.
한서영은 몸이 가볍게 떠오르자 본능적으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젖은 살이 스치는 순간 공기가 조용하게 뜨거워졌다.
주석현의 호흡이 아주 천천히 한서영에게 닿아 갔다.
바로 그때 문이 열렸고, 소지원이 그 장면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한순간에 굳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가에 어리는 놀라움과 배신감은 여과 없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내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주석현은 잠시 얼어 섰다가 한서영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곧바로 뒤를 쫓았다.
그렇게 그는 한마디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오해했어. 잠깐만.”
오해?
한서영과 주석현은 부부였다. 부부가 키스하는 것을 누가 봤다 한들, 그걸 굳이 설명해야 할 일이란 무엇인가?
오로지 그가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마치 소지원의 연인인 양 행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해명하려 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길들였던 사람이 그 깊게 뿌리내린 습관을 어찌 단번에 떨쳐 버리겠는가.
그가 허등지둥 모습으로 사라지는 등을 보며 한서영은 아주 작게 웃었고 곧 눈가가 뜨거워졌다.
수건을 두르고 창가로 다가간 한서영은 아래에서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았다.
“서영이가 잠들었어. 감기 걸릴까 봐 그랬던 거야. 그게 다야.”
“그래. 한서영이는 네 아내고, 나는 화낼 자격도 없어. 굳이 전 여자친구한테 이렇게까지 설명할 필요 없잖아.”
“지원아, 꼭 그런 말을 해야 속이 후련해?”
“내가 뭘?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의 대화도 끝나고 말았다.
소지원은 붉어진 눈으로 차에 올라 떠났고 주석현도 잠시 멈춰섰다가 곧 뒤를 따라갔다.
모든 소리가 가라앉은 뒤, 한서영은 조용히 탈의실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친구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서영 씨, 큰일 났어요. 석현이가 사고 났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