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윤수아 얼굴에 담긴 당황과 불안이 빠르게 사라졌다. 노서연의 스탠드에 맞아 쓰러진 사람은 바로 임진 그룹의 외동인 임해성이었다. 임씨 가문에는 자식이 귀했고 특히 아들이었던지라 임해성은 임씨 가문에서 오냐오냐 키워졌다.
임해성은 평소에도 사고만 치고 다녔지만 임씨 가문에는 돈도 많고 권력도 있었으며 또 외동이었던지라 무슨 짓을 해도 가문에서 전부 눈감아주고 덮어주었다. 그랬기에 임해성은 더 멋대로 살게 되었다. 평소 행실도 좋지 못했고 예쁜 여자만 보면 음흉한 마음을 품곤 했다.
하예원의 조롱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윤수아는 이 사실을 알고 복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예원은 최씨 가문 며느리였고 오늘은 최성철의 생일이었던지라 하예원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런 윤수아의 시선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노서연이었다. 노서연을 속여 이곳으로 데리고 오게 한 후 사람들을 불러 노서연이 얼마나 방탕한 사람인지 알게 할 계획이었다. 여하간에 노서연은 하예원이 데리고 온 사람이니 노서연이 망신을 당하면 하예원이 망신을 당하는 꼴이 되니까.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임해성의 어머니인 김은희는 통곡하고 있었고 윤수아는 구석에서 남몰래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원래는 그저 하예원에게 망신만 줄 생각이었는데 노서연이 임해성을 쓰러지게 하지 않았는가. 정말로 뜻밖의 결과였다.
윤수아는 노서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모님 아들은 저 출신도 모르는 여자가 때려서 쓰러진 거예요...”
윤수아의 말을 들은 김은희는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망설임도 없이 노서연에게 다가가 뺨을 때리려고 했지만 노서연의 얼굴에 손바닥이 닿기도 전에 하예원이 휙 잡아버렸다. 윤수아는 잔뜩 흥분한 채 끼어들며 말했다.
“사모님, 저 여자는 하예원 씨가 데리고 온 사람이에요.”
김은희는 그제야 시선을 돌려 옆에 있던 하예원을 보았다.
“이 천박한 년을 데리고 온 사람이 그쪽이에요? 일부러 내 아들을 때리라고 시킨 건가요?”
하예원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사모님, 임해성 씨가 먼저 노서연의 몸을 더듬으면서 덮치려고 한 거예요. 노서연은 본능적으로 저항한 거고요.”
이때 윤수아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덮치려고 했는지 저 여자가 유혹했는지는... 모르는 일이죠. 임해성 씨는 재벌 2세인데 그동안 어떤 여자인들 못 만나봤겠어요? 연예인은 물론이고 모델에 다른 재벌가 딸까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이렇게나 많은데 뭐하러 굳이 출신도 모르는 여자한테 손을 대려고 했겠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노서연에게로 향했다. 노서연은 비록 하예원처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쁜 편에 속했다. 눈도 크고 생기발랄해 보이는 것이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임해성의 취향이 바로 청순하면서도 활발한 사람이었다. 노서연은 임해성의 취향이었다.
다만 이런 말을 멍청하게 꺼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은희는 노서연을 천박하다는 듯 보면서 대놓고 경멸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내 아들이 왜 이딴 천박한 년한테 관심을 보였겠어요! 분명 이년이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싶은 마음에 계략을 꾸민 거겠죠. 그러다가 우리 아들을 이렇게 만든 거고!”
노서연의 옷은 이미 찢겨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챘지만 사람들은 김은희처럼 못 본 척하며 노서연의 탓으로 돌렸다. 김은희는 기세등등해져 말했다.
“하예원 씨, 이년을 데리고 온 사람이 하예원 씨라면서요. 하지만 최 대표의 체면을 봐서라도 책임을 묻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이년은...”
김은희는 노서연을 가리켰다. 눈빛에는 혐오가 가득했다.
“반드시 제가 알아서 처리하게 해줘요!”
노서연의 성격은 단순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던지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자신이 때리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때린 것과 하예원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는 것만 알았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언니, 전...”
노서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예원이 입을 열었다. 하예원은 노서연을 달래주었다.
“괜찮아.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
하예원의 말에 노서연은 가슴이 뭉클해졌고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하예원은 고개를 돌려 김은희를 보았다.
“임해성 씨가 먼저 서연이를 강제로 덮치려고 했으니까 서연이는 정당방위인 거예요... 사모님, 죄송하지만 서연이를 사모님의 뜻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윤수아는 상황이 예상과 달리 커지지 않자 계속 기름을 부었다.
“일부러 상해를 입힌 것인지 정당방위인지는 네가 판단할 게 아니잖아. 사실이 눈앞에 뻔히 펼쳐져 있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노서연이 정말로 임해성에게 범해질 뻔했는지, 정당방위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었고 심지어 목격자도 없었다. 그저 노서연이 임해성을 때려 기절시켰다는 것만 눈앞에 펼쳐져 있었으니 판단하기 어려웠다.
비록 연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임해성의 인성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하간에 나서는 순간 임씨 가문과 척을 지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필요만 하다면 그들은 오히려 임씨 가문의 편을 들어줄 사람들이었다.
이때 묵직하고도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무슨 일이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내어주었다. 그 사이로 남자가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왔다. 남자의 편에는 윤희설도 있었다.
최도경을 본 순간 윤수아는 흥분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도경 오빠, 노서연 저년이 글쎄...”
습관처럼 거친 말을 꺼낸 윤수아는 당황해하며 급하게 말을 고쳤다.
“아니, 노서연이라는 여자가 글쎄 오빠랑 하예원 씨가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간 틈을 타서 임해성 씨를 유혹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유혹에 넘어오지 않으니까 화가 났는지 임해성 씨를 저렇게... 만들었지 뭐예요. 도경 오빠, 저것 봐요. 임해성 씨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최도경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역시나 바닥에는 피를 흘리고 있는 임해성이 있었다. 최도경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구급차는 불렀어?”
하예원이 대답했다.
“불렀어.”
“최 대표.”
우아하기만 했던 김은희는 분노로 얼굴이 추악하게 일그러졌고 눈앞에 있는 젊은 남자를 보며 분노를 억눌렀다. 하지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에 담긴 분노는 미처 숨기지 못했다.
“내 아들이 최씨 가문 연회에서 이렇게 됐어요. 연회를 연 주최자로서 내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김은희를 흘끗 보던 최도경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 이 일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임해성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네요. 시간을 지체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
말을 마치자마자 마침 구급차가 도착했다. 김은희는 당연히 아들이 우선이었던지라 노서연을 서늘한 눈빛으로 노려보고서는 이런 말을 했다.
“넌 기다려!”
곧이어 시선을 돌려 하예원을 보더니 그대로 떠나버렸다.
김은희가 떠난 후 윤수아는 얼른 최도경에게 달려가 고자질할 생각이었지만 최도경은 윤수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하예원이 갈아입은 옷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