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전 여친의 존재란 참으로 미묘했고 현 여친이 가장 신경 쓰는 존재이기도 했다.
대다수 여자는 자기 남자의 말 몇 마디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드라마 한 편쯤은 바로 찍을 수 있었다.
지금 윤희설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대놓고 자랑 중이었다.
아무리 예전 기억을 잃은 하예원이라지만 이 장면은 눈에 거슬렸다.
최도경은 윤희설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근데 점심은 그냥 가져가.”
하예원 입에서 나올 수백 마디 말보다 최도경의 한마디가 훨씬 파괴력이 컸다.
윤희설의 얼굴이 순간 새하얘졌고 눈가가 벌써 촉촉해졌다.
“도경아, 난 그냥 네 건강이 걱정돼서 그랬어. 다른 뜻은 없었어...”
하지만 최도경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목소리도 평온하기만 했다.
“희설아, 지금 우리 사이에서 이런 행동은 좀 부적절해.”
하예원을 힐끗 쳐다본 뒤, 최도경은 말을 이었다.
“네 도시락을 받으면 내 아내가 내가 아직도 너한테 미련이라도 남았다고 오해할 수도 있잖아.”
같은 말도 하예원이 하면 별로 의미가 없지만 최도경이 직접 말하면 파괴력은 천장을 뚫을 정도였다.
윤희설은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윤희설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눈물은 뚝 떨어지기 직전까지 차올랐지만 윤희설은 어떻게든 참았다.
정성껏 준비한 마음이 그 한마디에 산산조각이 났다.
“알겠어.”
윤희설은 떨리는 손으로 도시락을 다시 정리했다.
윤희설은 고개를 깊게 숙였고 긴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뚝뚝 떨어지는 눈물만 줄이 끊어진 진주 목걸이처럼 흐르고 있었다.
하예원조차 그 모습이 살짝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윤희설은 금세 도시락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두 사람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해. 먼저 갈게.”
최도경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희설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윤희설이 떠난 뒤, 사무실 내 공기는 꽁꽁 얼어붙은 듯 정적에 잠겼다.
잠시 후, 최도경은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고 느긋하게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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