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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엄마, 아빠, 나 작품 촬영해서 상 탔어요...” 출장을 마치고 부모님 댁에 돌아온 임유아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손가락 끝으로 문고리를 꽉 쥐었다. 거실 한가운데 천우진과 임채아의 웨딩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는데 한 명은 그녀의 남편, 다른 한 명은 그녀의 쌍둥이 동생이었다. 그런가 하면 부모님은 아기 침대 옆에 둘러싸여 딸랑이를 흔들고 있었다. 순간 임유아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자세히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임채아가 대뜸 아이를 안아 들고는 철퍼덕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언니, 미안해...”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억울하고 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언니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우진 오빠 대를 이을 수 없잖아. 마침 내가 운 좋게 임신이 잘 되는 체질이라서...” 임채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우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부축하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냉랭한 말투로 설명했다. “유아야, 우리 부모님은 손주를 정말 간절히 원하셨어. 채아가 착한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해서 우리 아이를 낳아준 건데 넌 그걸 고마워해야 마땅한 거 아니겠니? 왜 죄인 취급하려고 들어?” 그는 금테 안경을 살짝 올리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렌즈에 반사된 백열등의 차가운 빛이 그의 주변을 싸늘하고 오만한 분위기로 감쌌다. 임유아의 부모님인 임상훈과 최현주도 서둘러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우진이 말대로 채아가 아니었으면 넌 평생 아이도 못 가졌을 거야.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함부로 소란 피우지 마라.”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임유아의 심장에 난도질했다.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잔인한 비밀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져 갔다. 말 한마디로 사람 잡는다더니 임유아는 이제야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이 말을 이어갈수록 임유아의 가슴에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슴에서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는데 마치 솜뭉치가 목구멍을 막은 것처럼 삼킬 수도 뱉어낼 수도 없는 답답함이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임유아는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보면 볼수록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그녀를 ‘석녀’라고 손가락질했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님은 그런 그녀의 결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늘 임채아만 편애했다. 친구들까지 그녀를 놀리고 괴롭혔지만, 오직 천우진만은 달랐다. 그는 2세대 중 가장 유망한 인물이다. 스스로 노력으로 회사 시가총액을 수조억 달러로 끌어올린 명실상부 황금 사위였다. 부모님이 주선한 소개팅을 거절하고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공개적으로 열렬히 구애했다. 사진작가로서 모든 권위 있는 상을 휩쓰는 것이 꿈이었던 임유아를 위해 그는 아낌없이 지원해주었고 심지어 목숨을 걸고 해외 격전지까지 동행해주기도 했다. 임유아가 불임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자 천우진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딩크족]임을 선언했고, 그녀에게 안전감을 주기 위해 병원에서 정관 수술까지 받았다. 그는 임유아의 오랜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인내심과 자상함으로 그녀의 날카로운 가시들을 하나하나 부드럽게 다듬어 주었다. 천우진은 한때 그녀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하늘이 너를 너무 완벽하게 만들어서 일부러 이런 결함을 준 거야. 네가 불임이어도 좋고 악녀라도 좋아. 난 이번 생에 오직 너만 사랑해.” 그는 이 사랑을 모두에게 널리 알렸고 임유아 본인조차 푹 빠져서 이 감정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뭇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임유아는 재벌가의 찐 사랑을 얻은 최초의 여자야.” 모두의 축복과 장밋빛 꽃다발 속에서 그녀는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거라고 믿었는데 잔혹한 현실은 아름답던 과거를 산산조각냈다. 스스로 아무리 다독여봐도, 이 일은 가슴에 날카로운 가시처럼 박혀 계속 아프게 찔렀고 서서히 썩어 문드러지며 악취를 풍겼다... 임유아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눈가에 조소가 가득했다. “엄마, 아빠. 이렇게 부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임채아랑 천우진이 한 쌍이라고 여기셨잖아요. 아이까지 태어났으니 이제 다섯 식구가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모두의 놀란 눈빛을 뒤로한 채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천우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본능적으로 그녀를 쫓아가려 했지만 임채아가 그의 소매를 잡아채고 창백한 얼굴로 아픈 듯 신음했다. “오빠, 나 배가 너무 아파. 좀 문질러 줄 수 있어?” 천우진은 문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임유아의 뒷모습과 힘없이 쓰러질 듯한 임채아를 번갈아 보았다. 짧은 몇 초 사이에 그는 결정을 내렸다. 익숙한 듯 그의 커다란 손이 임채아의 배를 감쌌고, 임상훈 부부는 아기를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 임씨 가문을 벗어난 임유아는 홀로 비자 신청 센터를 찾았다. 직원이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어떤 이유로 출국하시려는 거죠?”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억지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촬영한 작품이 퓰리처상을 받았거든요. 주최 측에서 다음 달 초에 해외에서 시상식을 한다고 통보해왔어요.” 그 말에 주변 직원들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일이 고맙다고 말한 후,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는 천우진과 함께 살았던 도심의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임유아는 미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 봉투 안에서 혼인신고서가 툭 떨어졌다. 혼인신고서에 적힌 모든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휩싸였다. 그건 마치 무딘 칼날로 살점을 조금씩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었다. 알고 보니 임유아가 출장 간 사이에 천우진은 임채아와 함께 아우디 공화국으로 건너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합법적으로 두 명의 아내를 둔 셈이었다. 한 명은 국내에서, 다른 한 명은 해외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임유아만 평생 사랑하겠다던 맹세는 불과 3년이 지났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천우진의 ‘평생’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이야. ‘됐다, 이제 그만 하자.’ 임유아는 손을 들어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사업은 오히려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꿈에만 집중하면 된다. 다른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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