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나는 공해 유람선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나와 성이 다른 여동생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카드 게임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여동생과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두 남자가 맞은 편에 서서 한 여자를 감싸고 돌았다. 그러고는 내 여동생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강씨 가문 아가씨가 이 정도 수준일 줄 몰랐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주 당당했잖아. 그깟 스카프 때문에 하영한테 6억을 달라고 했다며?”
“지금 포기하는 게 어때? 내일 강씨 그룹의 15퍼센트 지분을 하영에게 넘겨.”
여동생은 주먹을 꽉 쥔 채 눈시울을 붉혔다. 이때 옆에서 구경하던 남자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말했다.
“예쁜 아가씨, 돈이 부족한가 봐? 옷을 한 벌 벗을 때마다 10억씩 빌려줄게.”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부 벗으면 내가 갖고 있던 돈을 줄게.”
나는 위층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반지를 돌렸다. 몇 년 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으니 사람들은 내 여동생이 심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잊은 것 같았다.
비록 여동생은 아버지의 성을 따랐지만 그녀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 곁에 있던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당장 유람선 매니저를 불러와서 무릎 꿇게 할게요.”
나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일단 먼저 지켜봐야겠어. 무슨 수작을 하는지 보고 나서 움직여.”
내 가족에게 손을 댄 사람은 살아서 이 유람선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유진혁은 남자들한테 둘러싸인 내 동생을 지켜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강소희, 왜 벗지 않는 거야? 나한테 네가 찍은 은밀한 사진이 있어. 한 세트를 팔면 돈을 줄 테니 네가 선택해.”
그는 USB 카드를 직원에게 넘겼다. 이때 스크린이 반짝이더니 강소희가 야릇한 자세를 취하고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강씨 가문 아가씨는 평소에 잘난 척하더니 이런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네? 몸매가 아주 볼만 해.”
“다 벗지 않았는데 벌써 욕구가 치솟는걸? 옷을 다 벗으면 이 아가씨랑 하다가 죽을 것 같아.”
남자들이 침을 흘리며 그 사진을 보고 있었다. 이때 이태민이 또 다른 USB 카드를 꺼내면서 씩 웃었다.
“나한테도 네 사진이 있어. 옷을 벗지 않겠다면 이 사진을 팔아서 돈을 구하는 게 어때?”
뭇사람들은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두 도련님 덕분에 볼거리가 넘쳐나네요. 정말 감사해요.”
강소희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친하게 지냈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울어도 소용없어. 네가 하영을 비난하면서 배상하라고 할 때는 아주 의기양양했잖아. 이제 와서 왜 불쌍한 척해?”
“네가 돈이 없다고 하니까 도와줬을 뿐이야. 그런데 고마워하지 않고 피해자처럼 굴어?”
강소희가 다급히 말했다.
“그 스카프는 언니가 나한테 준 선물이야. 진하영이 일부러 찢어버린 거란 말이야.”
유진혁과 이태민 뒤에 숨어있던 진하영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흐느껴 울었다.
“소희 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 몸까지 다 걸었으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번 판은 언니가 포기하는 게 어때요?”
유진혁이 책상을 내리치면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강소희, 네가 가진 돈이 많아서 일부러 하영을 난처하게 하는 거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하영이 사과했으니 넘어가면 될 일이야.”
이태민이 진하영을 부축하더니 품 안에 끌어안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하영을 괴롭힐 줄 몰랐어. 평소에 네가 하영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것 같아.”
진하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한테 그러지 마세요. 내가 실수해서 언니의 심기를 건드린 거예요. 나는 언니가 주는 벌을 달게 받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강소희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소희 언니는 이미 돈을 다 날려서 하루에 알바를 8개나 하고 있어요. 언니가 지금 포기하면 이쯤에서 마무리할게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강소희는 갖고 있는 돈을 전부 걸었고 외할아버지가 아무도 모르게 준 지분도 같이 걸었다.
만약 이 상황에서 포기한다면 빈털터리가 될 것이고 막대한 빚을 져서 몇십 년 동안 갚게 될 것이다.
나는 진하영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내가 강소희를 위해 특별 제작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강소희한테 선물한 금팔찌를 끼고 있었다.
어머니가 강소희한테 물려준 할머니의 금목걸이도 착용했다.
화려한 액세서리의 주인인 강소희는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나 심윤아의 여동생이 이렇게 비참해질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강소희는 입술을 깨문 채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걸 보면 진하영의 말이 사실일 것이다.
“조사해 봐.”
내가 차갑게 말하자 김 비서는 고개를 숙이고는 뒤돌아 갔다. 나는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사업을 하느라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매달마다 강소희한테 연락했었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이때 강소희가 고개를 쳐들더니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우리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잖아. 너희가 어떻게 내 사진으로 나를 협박할 수 있어? 왜 이렇게 변한 거냐고!”
유진혁이 피식 웃더니 그녀를 훑어보며 말했다.
“사진을 팔지 않을 생각이면 얼른 포기해. 네가 포기해서 이 돈을 하영이 갖게 된다면 널 용서해 줄지도 몰라.”
이태민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 끌지 말고 당장 가서 사채라도 내! 아니면 전부 벗어서 돈을 바꾸든지 하란 말이야.”
주위에서 입에 담기 힘든 말이 오갔다.
“아가씨, 얼른 벗어서 보여줘.”
“나랑 하룻밤만 자면 베팅해 줄게. 섭섭하지 않게 준다고 약속할 테니까 이리 와 봐.”
강소희는 남자들한테 둘러싸여서 덜덜 떨고 있었다. 모두 굴복할 거라고 생각할 때, 강소희는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말했다.
“진하영과 같은 금액을 베팅할게.”
그녀의 말에 현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