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축하해요, 임신이에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수지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진짜 임신이라니?! 결혼 3년 만에 그녀는 드디어 박민혁과의 아이를 임신했다! 김수지는 너무 기뻐 한시라도 빨리 이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를 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기사님에게 물어서야, 박민혁이 오늘 교외의 본가로 가서 연회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적인 연회가 많이 열렸고, 참석자들은 대부분 자주 보는 친구들이였다. 게다가 박민혁은 항상 그녀에게 애정을 쏟아부었기에, 김수지는 별 생각 없이 옷을 챙겨 본가로 그를 찾으러 갔다. 가는 내내, 김수지는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렸고, 입꼬리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 올라갔다. 그녀는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차에서 내렸으나, 집사 아저씨가 그녀를 문밖에 멈춰세웠다. 그것도 박민혁의 뒤에서 오랫동안 보좌해온 집사 아저씨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김수지를 살짝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평소의 공경함은 아예 없었으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사모님,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김수지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박민혁과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그는 이런 무시와 탐탁치 않은 눈빛을 많이 받았었다. 모두 그녀는 돈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 신분 상승을 한 비천한 여자라고 생각했으나, 그가 강남에서 유명한 김씨 집안의 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세 살 때 길을 잃어 완전히 남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작은 고장에서 강남까지 가족을 찾으러 왔으나, 그 누구도 그녀를 챙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친딸인 김수지가 직접 가족을 찾아 강남까지 김씨 집안을 찾아온 것은 교활하고 비천한 짓이며, 김씨 집안의 행복한 생활을 파괴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자신의 부모님을 직접 뵙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도 잘못인가? 어머니가 따귀를 때려 얼굴에 난 손자국이 그 답을 말해주었다. 김씨 집안의 모든 무시와 탐탁치 않은 눈길이 그의 눈에 깊이 새겨졌고, 그때 그 사람들의 눈길이 지금 집사 아저씨의 눈빛과 똑같았다...... 김씨 집안 사람들에 대해 그녀는 더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으나, 집사 아저씨가 왜...... 박민혁과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 왜 그렇게 그녀를 볼까? 김수지는 잠시 눈을 감았고, 머리 속에는 박민혁의 요물 같이 잘생긴 얼굴이 그려졌다. 3년전 본인이 제일 힘들 때 박민혁이 김씨 집안에 와서 결혼 얘기를 꺼내, 그녀를 차가운 집에서 데리고 나온 순간부터, 그는 그녀의 구세주였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불안할 때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의 얼굴을 생각하면 큰 힘이 생겨났다. 그는 그녀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다. 김수지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감정을 추스린 후였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모두가 침을 뱉을 수 있는 김씨 집안의 딸이 아니라, 박민혁의 아내이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이다. 그녀는 모든 경멸을 마주할 충분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녀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허리를 곧게 펴고 "집사 아저씨, 저 민혁 씨를 만나러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집사 아저씨가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박민혁을 만나러 왔다고 말을 전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집사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오늘 손님은 아주 중요한 분이셔서 제가 지금 회장님께 연락을 드릴 수 없네요." 집사 아저씨의 강경한 태도는 김수지의 가슴이 철렁하게 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아래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녀의 민감하게 이번 연회가 범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집사 아저씨가 이렇게 강경하게 그녀를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박민혁이 분부한 것이다. 수백번이고 드나들었으나 지금은 밖에서 들어갈 수 없는 눈 앞의 본가를 보면서, 김수지 눈가에는 다시 당황함이 역력했고, 그녀는 감히 들어갈 수도 없었다. 김수지와 박민혁의 결혼은 아주 황급히 진행되었다. 심지어 그가 김씨 집안에 청혼을 하러 간 날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이였다. 하지만 결혼한 3년 동안 박민혁은 그녀에게 심한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가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해도 박민혁은 정말 따줄 기세였다. 그래서 그녀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렇게 사적인 연회에도 본인이 참석할 수 없게 된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집사 아저씨의 눈치를 몇번이나 살폈으나, 여전히 단호히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맘 속의 불안감을 억누르며 바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기사님에게 자신과 박민혁이 따로 살고 있는 산비탈 별장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집에서 그를 기다려도 돼......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혁이 돌아왔다. 김수지는 연회가 일찍 끝나서 조금 의아했지만, 그래도 서둘러 그의 코트를 받았다.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오늘 연회에는 누가 참석한거에요? 왜 집사 아저씨까지 가서 손님 접대를 하게 된거에요?" 박민혁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변했다. 그것은 김수지가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였다. 마치 두 사람 사이가 갑자기 빙하로 갈라진 듯, 그녀는 얼어붙었다. "민혁 씨, 무슨 일 있어요?" 김수지는 조금 놀랐으나, 눈빛 속의 의지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 연회에 초대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집사 아저씨까지 갔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고 심지어 연회에 참석할 자격도 없었다. 심지어...... 김수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집사 아저씨가 일부러 그녀를 문밖에서 막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본인만 들어갈 수는 없는 느낌이 들었다...... 박민혁은 그녀의 고집스런 눈빛을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김수지가 보기에는 물처럼 순해 보이지만 뼈 속 깊은 곳에는 가장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웃으면서 따뜻한 눈길로 그녀에게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오랜 친구일 뿐이야." 오랜 친구일 뿐인가? 이렇게 한참 대치하다보니, 꽉 쥔 김수지의 손에는 시퍼런 자국이 생길 지경이였다. 아마도 박민혁이 한번도 이렇게 말을 얼버무린 적이 없었기에, 김수지는 마음 속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임신의 기쁨이 모든 의심을 압도했다. 둘 사이에 이미 아기가 생겼는데, 다른 일들이야 뭐가 됐든 천천히 해결하면 되지 않겠는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그가 곧 아빠가 된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김수지는 진정하고 임신 검사서를 다시 꺼내 등 뒤에 숨긴 다음, 초조하게 박민혁을 바라보았다. "민혁 씨, 당신에게 전해줄 소식이 있어요." 너무 신나고 급해서 침실에서 나올 때 자칫 넘어질 뻔 했다. "급해하지 마." 박민혁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고, 그녀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남자의 이목구비는 강인했고 표정은 단호했지만 눈가에는 숨길 수 없는 자상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결국 그의 눈빛 속에 있던 깊고 복잡한 감정은 진정되었고, 오직 확고한 목소리만 남았다. "앉아, 할 말이 있어." 크리스탈 샹들리에의 빛이 그의 얼굴에 비춰져, 매끈한 턱선과 높은 콧대가 더없이 우아하고 고귀하게 윤곽을 이루게 했다. 그 사람 전체가 하늘의 빛을 품고 있는 듯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남자가 늘 그녀에게 자상하게 대해줬다. 김수지는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두 팔을 들어 그의 목에 걸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럼 먼저 얘기하세요.” 그녀의 맑고 투명한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사랑이 있었고, 익숙한 행동은 박민혁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팔을 내려놓고, 두 사람이 마치 한 번도 가까웠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거리를 두었다. 김수지는 점점 더 불안해졌고, 그녀의 입술은 너무 심하게 물고 있은 탓에 흰색을 띄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꽉 쥐고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민혁 씨,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에요?"라고 물었다. 박민혁은 고개를 들어 가볍게 그녀를 한번 보았으나, 눈 앞에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수연...... 김수지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여동생 김수연, 김수지와 70% 정도 비슷하게 생긴 그녀. 박민혁이 진심으로 마음에 둔 그 사람, 그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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