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윤채원과 윤아린은 단지 안을 천천히 걸었다.
딸이 피곤하다며 품에 안기자 윤채원이 몸을 숙여 들어 올렸다.
마른 체형이라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아린은 스스로 내려가겠다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는 지나치는 주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눴다. 그러다 낯선 남자와 마주쳤다.
배유현의 눈썹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
평범한 외모에 옷차림도 투박했고 키도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채원은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붉은 입술 사이로 반듯한 치아가 드러나자 배유현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왜 저런 남자한테 그렇게 웃지?’
윤아린은 모르는 눈치였다. 남편일 리도 없었다.
게다가 윤채원이 이런 멀끔하지만 약해 보이는 남자를 좋아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순간, 안경을 쓴 남자가 윤아린을 들어 올렸다. 아이는 그의 어깨에 기대 환하게 웃었다. 윤채원과 나란히 걷는 모습은 마치 세 식구 같았다.
배유현은 담배를 꾹 비벼 끄더니 성큼 다가섰다. 몇 걸음 만에 두 사람의 바로 뒤에 닿았다.
윤아린이 그를 발견하자 작은 송곳니가 드러나며 외쳤다.
“아저씨!”
배유현은 곧장 손을 뻗어 아이를 안경 남자의 품에서 빼앗듯 받아 안았다. 윤아린은 익숙하다는 듯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윤채원은 돌아보다가 불시에 나타난 그에게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배유현은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채원 씨, 이게...”
장윤호는 얼어붙었다.
윤채원이 키 큰 남자에게 이끌려가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두 걸음 다가섰지만 배유현이 차갑게 눈길을 던지는 순간 발이 굳어버렸다.
“배유현 씨, 왜 여기 있어요?”
윤채원은 손목을 붙잡힌 채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걸었다.
남자의 손아귀는 단단했고 몸을 빼려 했지만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윤아린이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소동이라도 벌어지면 아이가 놀랄 터였다.
단지 안쪽으로 들어서자 배유현이 낮게 말을 내뱉었다.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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