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왔어요?” 채시아는 피아노 뚜껑을 덮으며 일어섰다. 윤성빈은 늘씬한 키로 문가에 기대선 채 물었다. “왜 멈추는 거야?” 예전엔 워낙 바빠서 채시아가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는 줄 몰랐다. 딱 한 번 채선우가 무슨 프로젝트 얘기로 자신을 찾아왔을 때 우연히 채시아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땐 채선우에게 짜증이 잔뜩 나 있었고 괜히 채시아에게도 화풀이를 했다. 그렇게 화를 낸 이후, 채시아는 이곳 음악실에 다시 오지 않았고 피아노도 다시는 치지 않았다. 그때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신 방해될까 봐요.” 채시아는 담담히 말한 뒤, 곧바로 화제를 바꿨다. “협의서 준비해뒀어요. 볼래요?” 윤성빈은 잠시 멍해졌다. 밖에 다녀오느라 그 얘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응.” 둘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 윤성빈이 불쑥 물었다. “피아노 잘 치더라. 그 곡 제목이 뭐야? 나 처음 들어봤어.” 채시아는 순간 멈칫했다. “처음 들어봤다고요?” 그 곡은 그녀가 고등학교 때 작곡한 자작곡이었다. 당시 윤성빈에게 들려주려고 애써 만든 곡이기도 했다. 윤성빈은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깊고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묻는다. “내가 들어본 적이 있어야 해?” 채시아는 그가 잊었구나 싶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물어본 거예요. 고등학교 때 쓴 곡인데 아직 발표한 적은 없어요.” 그게 그녀의 자작곡이라는 말에 윤성빈은 다시 한 번 그녀를 눈여겨보았다. 생각보다 아내는 다재다능했다. 윤성빈이 먼저 앞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채시아의 눈에 묘한 감정이 어렸다. 정말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 늘 바빴잖아. 그때 일이 기억에 남지 않을 수도 있지.’ 방에 도착하자 채시아는 직접 쓴 협의서를 내밀었다. “한 번 읽어봐요. 괜찮으면 출력하고 우리 서명해요.” 윤성빈은 종이를 받아 들고 대충 훑었다. [1. 서로를 존중할 것. 상대의 동의 없이 낯선 사람 이상의 신체 접촉(예: 포옹)은 금지. 만약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