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윤성빈은 자선 사업을 하면서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사업가를 제일 싫어했다. 그는 기부한 곳에 직접 갈 마음이 없어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마음과 다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 “조금 있다가 바로 출발해요. 준비하고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 채시아가 사무실의 문을 열려 할 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거라면 옷차림에 신경 써야 하지 않아? 그렇게 입고 갈 건 아니지?” 채시아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날씨가 더워져서 단추를 풀고 있다가 잠그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가서 단추를 잠갔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쳤다. “죄송해요.” 채시아가 고개를 들자 신도영과 두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란 그녀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홍정 그룹에서 일하면 신도영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채시아는 그가 또 한바탕 소란을 피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신도영은 채시아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괜히 겁줄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윤성빈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채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신도영은 뒤끝이 길어서 언젠가는 채시아한테 제대로 복수할 것이다. 예전에 채시아가 조나연 대신 선을 본 것이 신도영의 심기를 건드렸다. 비록 지난번에 술집에서 마주쳤을 때 채시아를 모욕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신도영은 윤성빈보다 더 소름 돋는 면이 있는 남자였다. 윤성빈은 기껏해야 그 여자를 무시하거나 차갑게 대하지만 신도영은 여자라고 봐주지 않았다. 어느 한 번 채시아가 신도영과 부딪힌 적이 있었다. 한 달 뒤, 낯선 사람들이 그녀를 아무도 없는 곳에 던져놓고 사라졌었다. 채시아는 두려움에 손을 덜덜 떨었다. 한편, 대표 사무실. 신도영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성빈아, 허 비서한테 총괄 대표를 초빙하라고 지시했어?” 윤성빈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