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서강준은 임지안을 한참이나 노려봤다.
그의 눈빛은 분노에서 시작해 점점 혼란으로 바뀌더니 결국 냉소로 변했다.
“이제는 강하게 나와도 안 통하니까 부드럽게 나오는 거야?”
그는 한발 다가서며 낮게 웃었다.
“임지안, 분명히 말하지만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아.”
임지안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고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오히려 서강준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오른 그는 결국 뒤돌아 큰 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임지안은 이미 위통 때문에 허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욕실로 달려가 세면대에 몸을 기댄 채 입안 가득 피를 토해냈다.
붉은 피가 하얀 타일 위로 튀며 선명하게 번져갔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진통제를 삼켰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천천히 머리를 말렸다.
그런데 빗질하던 그녀의 손이 멈추며 빗살 사이에 엉켜 있는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거울 속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초췌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아마 반달도 버티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다음 날, 임지안은 오래된 사진관을 찾았다.
“영정사진이요?”
돋보기를 쓴 사장님은 놀란 눈으로 젊고 이쁜 그녀를 바라봤다.
“아가씨, 이렇게 젊은 분이 왜 갑자기 그런 걸 찍어요?”
임지안은 잔잔히 웃으며 대답했다.
“병이 심해서 오래 못 살 것 같아서요. 예쁘게 찍어주세요.”
사장은 한숨을 쉬며 조심스레 그녀의 머리를 다듬어줬다.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나올 겁니다.”
카메라 앞의 임지안은 연한 화장을 하고 가장 좋아하던 붉은 드레스를 입었다. 그 미소는 밝고 찬란했으며 마치 아무 걱정 없는 어린 시절의 그녀 같았다.
촬영이 끝나자 사장이 물었다.
“사진은 바로 가져가실래요?”
“아니요.”
임지안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 수정해서 며칠 뒤에 이 주소로 보내주세요.”
그녀는 집 주소를 써 내려가며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내 영정사진을 언니의 사진 옆에 놓을 수 있겠지.’
사진관을 나온 임지안은 곧장 서씨 가문의 납골당으로 향했다.
그녀는 서강민과 임지현의 영정 앞에 서서 손끝으로 액자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사진 속 언니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강민 오빠의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금방이라도 사진 속에서 걸어 나와 예전처럼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만 같았다.
“강민 오빠, 언니...”
임지안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였다.
“저도 곧 곁으로 갈게요. 그리고 두 집안의 원한도...”
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이제 정말 끝이겠죠.”
“임지안, 누가 너더러 여기 오라고 했어?”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서강준의 차가운 목소리에 임지안의 몸이 크게 떨렸다.
놀라 손을 움직이다가 팔꿈치가 액자 모서리를 스쳤다.
쨍그랑.
고요한 납골당 안에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서강준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성큼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들을 죽게 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영정사진까지 깨뜨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임지안은 몸부림치며 손을 빼려 했다.
“네가 갑자기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내가 깨뜨릴 일은 없었어.”
“닥쳐! 살인자가 무슨 자격으로 그 사람들의 물건에 손을 대?”
“나는 그냥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보고 싶다고?”
서강준은 냉소를 흘렸다.
“네가 감히 그럴 자격이 있어?”
그는 거칠게 그녀를 밖으로 끌어냈다.
임지안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 무릎이 문턱에 크게 부딪혔다.
“놔! 서강준, 미쳤어?”
“미친 건 너야!”
그는 그녀를 납골당 중앙으로 세게 밀쳐버렸다.
“좋아, 그렇게 나가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무릎 꿇고 그 사람들에게 속죄해!”
경호원들이 다가와 임지안의 어깨를 억눌렀다. 그녀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비켜! 나만의 속죄 방식이 있어! 이런 식은 아니야!”
서강준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며 발로 그녀의 무릎 뒤를 세게 걷어찼다.
“아!”
임지안의 비명이 납골당을 가득 메웠다. 그녀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무릎이 깨진 유리 조각 위로 떨어지며 붉은 피가 순식간에 치맛자락을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