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순간 파티홀은 술렁이는 목소리로 가득하게 되었다.
곧이어 주위에서는 숨소리조차 사라진 듯 정적이 흘렀다. 진한나는 차가운 얼굴의 하연우를 보자 묘하게 긴장되어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날 밤 만취 상태였던지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전부 희미하게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상하게도 그에게서 나는 향기가 시원함을 넘어 서늘하게 느껴져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손을 내릴 뻔했다.
그러나 하연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안해요. 다음에는 꼭 신경 쓸게요.”
그의 대답에 파티홀에 있는 모두가 얼어붙고 말았다. 특히 하연우와 친한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표정 관리조차 되지 않았고 일제히 고개를 돌려 고건우를 보았다.
그들은 고건우가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해 충격에 빠진 것이 아니라 진한나가 다가가 애교를 부린 상대가 하연우라는 것에 충격에 빠진 것이다.
비록 술자리에서 자주 어울리긴 했어도 아무도 하연우의 집안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건 그저 금융 투자를 한다는 사실이었고 성격은 과묵하고 여자와는 거리를 둔다는 것뿐이었다.
하연우의 집안에 자산이 어느 만큼 있는지는 상상조차 못 했다. 여하간에 하연우가 손에 차고 있는 손목시계 하나만 해도 몇십억에 달했고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시계였으니까. 실력을 숨기고 있는 이런 남자가 마음먹고 누군가를 짓밟고자 한다면 그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 분명했다.
다만 더 충격적인 건 그런 하연우가 진한나와 엮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진한나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어젯밤 하연우가 자신을 끌어안은 순간 고건우와 사이가 틀어져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어제 너무 마셔서 오늘은 마시면 안 돼요. 대신 나랑 같이 주스 가지러 가줄래요?”
말 속에 여러 가지 정보가 담겨 있었고 모두가 이해하는 데 애를 먹을 정도였지만 하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대답해 주었다.
“그래요. 가요.”
너무도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에 고건우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가가려 했지만 소가연이 고건우를 붙잡았다.
“건우 씨, 왜 그래요? 저 언니는 누구예요? 건우 씨가 엄청 신경 쓰는 것 같아서요.”
소가연의 말에 고건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은 그저 분노를 억누르고 소가연을 달래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흔히 수작 부리는 사람일 뿐이야. 내가 저런 여자한테 신경을 왜 쓰겠어.”
그러고는 과시라도 하듯 소가연을 품에 끌어안고 코끝을 부드럽게 비볐다.
“바보, 혹시 질투했어?”
소가연은 잘생긴 고건우의 얼굴을 보며 수줍게 품에 안겨들었고 주변에서는 부러운 농담이 쏟아졌다.
“대표님과 사모님은 금슬이 정말 좋으시네요. 너무 부러워요.”
고건우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여전히 진한나에게 꽂혀 싸늘하게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진한나와 눈이 마주쳤다.
진한나는 립스틱 붉게 바른 입술을 살짝 올리고 있어 보는 사람마저 두근거리게 했다. 이내 천천히 발을 들어 하연우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려는 듯 다가갔다.
“어젯밤 그 일, 계속해요.”
하연우가 놀라 고개를 돌리자 코끝이 맞부딪히며 진한나와 입술이 닿을락 말락 했다.
원하던 반응을 얻은 진한나는 일부러 하연우의 목에 팔을 감으며 찬란하게 웃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하연우와 입 맞출 듯이 굴었다.
그러자 하연우는 얇은 진한나의 허리를 감싸더니 품으로 끌어안았다. 하연우의 숨결이 진한나의 볼에 닿으며 공기 중에 사라졌다.
“여기서?”
어젯밤 진한나는 술에 취해 하연우에게 벽에 몰려 압도적인 기세를 겪었던 기억이 떠올라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하연우는 웃으며 진한나를 떼어냈다. 진한나는 주스를 꿀꺽꿀꺽 들이켜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막 잔을 내려놓은 순간 허연우는 또 다른 잔을 내밀었다.
“그렇게나 목말랐어요?”
매력적인 하연우의 목소리에 진한나는 순간 목이 턱 막혔다.
‘일부러 그러는 거지?'
급히 잔을 받아 또 반을 들이키고는 내려놓았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말을 마친 후 서둘러 몸을 돌렸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던 때 고건우가 쳐들어와 진한나를 세면대에 몰아붙였다. 고건우의 커다란 손이 거침없이 드레스 안을 파고들었다.
“진한나, 일부러 나 약 올리는 거지?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해?!”
이내 고개를 숙여 거칠게 진한나의 입술을 덮쳤다. 고건우가 이러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예전의 진한나였다면 순순히 받아들였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옆에 있던 곽 티슈를 들어 그대로 고건우에게 던졌다.
고통에 몸을 굽히고 있는 사이 진한나는 서둘러 뒤로 물러나 싸늘한 눈빛으로 고건우를 보았다.
“고 대표님, 우린 이미 끝났어요. 내가 뭘 하든 상관할 자격이 없다고요. 아니면 혹시... 어젯밤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오늘 다시 해보고 싶은 건가요?”
어젯밤의 굴욕이 떠오른 고건우는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네가 자꾸 말 안 들으면 나 정말 화낼 거야. 이리와, 나한테 키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