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차들이 고속도로로 진입하자,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서은수는 옆에 앉은 남자의 날카로운 옆모습을 바라보며, 별안간 결혼한 그해가 떠올랐다.
그때 강씨 가문은 곤궁한 처지에 놓여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의 웨딩카는 렌트카였고, 결혼반지는 길거리 노점에서 2만 원에 산 은반지였으며, 서은수의 부케마저도 싸구려 꽃이었다.
서은수는 그와 함께 진흙탕 속에서 허덕이며 걸어 나왔다.
함께 고생하던 시절, 그래도 어렴풋이 작은 보답을 받았던 것 같았다.
강지훈이 밤늦게 돌아오면 부엌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국 한 그릇이 놓여 있었고, 서은수의 생일 때면 강지훈은 비서를 시켜 3단 생일 케이크를 보내주었다.
비록 카드에는 [고객이 준 건데, 단 건 싫어.]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 케이크는 서은수가 가장 좋아하는 헬로키티였고, 촛불의 숫자도 그녀의 나이와 정확히 들어맞았다.
결국 이 모든 게 그녀 홀로 감동한 쇼였단 말인가?
가는 길에서 도승아가 체면을 되찾으려는 듯 갑자기 손을 뒤로 뻗어 비둘기 알 크기의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드러냈다.
“지훈아, 네가 사준 이 반지 진짜 너무 마음에 들어. 은수가 낀 결혼반지보다 더 큰 것 같네?”
강지훈은 흠칫 놀라더니 서은수의 약지 손가락에 낀 깔끔한 은반지를 쳐다봤다.
결혼 후 그는 서은수에게 수없이 많은 귀한 보석을 선물했지만, 그녀는 줄곧 이 저렴한 낡은 물건을 끼고 다녔다.
서은수는 시선도 올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결국 다 싸구려잖아.”
순간 도승아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금 누굴 싸구려라고 하는 거야?”
“누가 대꾸하면 누구겠지!”
“서은수, 입 닥쳐!”
강지훈이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 남자가 편들어주니 도승아는 기세에 힘입어 울고 불며 차 문을 열고 내리려는 듯했다.
“나 내려줘! 네 와이프 눈에 거슬리고 싶지 않단 말이야!”
기사가 황급히 만류했다.
“아이고, 승아 씨, 고속도로에서 이러시면 너무 위험해요!”
서은수는 그녀의 연기를 냉담하게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뛰어내릴 거면 그냥 뛰어. 그딴 발연기를 누구 보여준다고 그래?”
이번엔 강지훈이 발끈했다. 그는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날카롭게 명령하고, 차 문을 거칠게 열더니 서은수를 밖으로 밀어냈다.
“안 되겠다. 넌 좀 내려서 진정해.”
서은수는 무방비 상태로 밀려난 채 걸음을 휘청거리다가 고속도로 갓길에 쓰러졌다.
거의 동시에, 뒤따르던 승용차가 피하지 못하고 그들의 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서은수를 더 큰 절망에 빠트리게 한 것은 바로 뒤따르던 차량 행렬까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심각한 연쇄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거대한 충격으로 롤스로이스는 방향을 잃고, 브레이크를 통제하지 못한 채 서은수를 향해 돌진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서은수는 끈이 잘린 연처럼 훅 날려갔다.
바닥에 무겁게 떨어졌을 때, 마지막으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몸을 앞으로 숙여 조수석의 도승아를 꽉 안고 있는 강지훈의 모습이었다.
다시 의식을 되찾고 보니 서은수는 한창 병원 들것 위에 누워있었고 온몸이 피로 뒤덮였다.
에어백과 강지훈의 보호 덕분에 도승아는 이마만 약간 긁혔을 뿐, 강지훈의 품에 조심스럽게 안겨 있었다.
“강 대표님, 연쇄 추돌로 부상자가 너무 많고 병원 자원이 부족하니 딱 한 명만 살릴 수 있습니다. 저희는 중상자인 서은수 씨를 먼저 구할 것을 제안합니다.”
의사가 강지훈에게 결정을 재촉했다.
그가 이제 막 허락하려고 할 때, 도승아가 필사적으로 그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쏟았다.
“지훈아, 사실 내가 예전에 회사 기밀을 훔친 건 어쩔 수 없었어. 놈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네 목숨을 위협하겠다고 했거든. 다 널 위해서였어!”
강지훈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망설임 없이 의사에게 소리쳤다.
“승아부터 살려요. 더는 우리 승아 저버릴 수 없어요!”
서은수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지훈아, 나한테 빚진 건 어떻게 갚을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