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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뼈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쥔 신지환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부드럽게 웃었다. “진작 내려놨지. 헤어지고 연락이 끊겼어. 앞으로 더 만날 일 없을 거야.” 여다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숙련된 거짓말이었다. 신지환이 여다현의 얼굴을 어루만지려는데 여다현이 무의식적으로 피하자 신지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가 그의 스킨십에 반감을 드러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는데?” 신지환의 말투가 엄숙해졌다. “요즘 우울한 이유가 그거야?” 여다현이 입을 열려는데 귀청을 때리는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신지환이 잠깐 뜸 들이더니 결국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이제인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지환아. 양아치들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데 너무 무서워...” 신지환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위치 보내.” 신지환은 외투를 챙겨서 나가며 여다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자기야, 회사에 일이 터져서 그러는데 이따 차 잡아서 들어가.” 여다현은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택시를 잡아 신지환을 미행했다. 어두운 골목, 여다현은 신지환이 이제인을 등 뒤에 숨긴 채 혼자서 몽둥이까지 든 네다섯 명의 양아치를 상대하는 걸 보게 되었다. 늘 차분하고 신중하던 신지환은 온데간데없었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으로 양아치들의 급소만 노렸다. 신지환의 주먹에 머리가 찢어진 양아치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이제인을 노리자 신지환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제인 앞을 막아섰다. “제인아.” 칼이 신지환의 가슴에 박히자 빨간 피가 셔츠를 물들였다. “지환아.” 이제인이 쓰러진 신지환을 안고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무서워하지 마...” 이제인의 품에 쓰러진 신지환은 허약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평생 보호해 주겠다고... 나 약속은 지켜...” 옆에서 지켜보는 여다현은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수술실 앞, 눈물범벅이 된 이제인이 입을 열었다. “전에도 그랬어요... 나를 위해 다른 사람과 레이싱하다가 죽을 뻔했고... 내가 사고를 당했을 때 수혈해 주느라 쓰러지기까지 했고요...” 여다현이 벽에 기대 조용히 들었다. 신지환처럼 점잖고 신중한 남자도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상대는 종래로 여다현이 아니었다. “조금만 빗나갔어도 심장을 찔렸을 거예요.” “제인 씨가 누구죠? 수술하려면 가족의 사인이 필요합니다.” 이제인이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는 가족이 아닙니다... 와이프는 이쪽이에요.” 간호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여다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환자가 계속 제인이라고 부르면서 유산 전부를 제인에게 물려주겠다고 하던데요...” 말실수했음을 알아챘는지 의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멈추는데 여다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간호사의 동정 어린 눈빛을 받으며 사인한 여다현이 몸을 돌리는데 이제인이 뒤에서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지환이 사랑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고비를 넘기지 못했는데 옆에서 보살펴주지 않고 어디 가는 거예요?” 여다현이 걸음을 멈췄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전에는 참 많이 사랑했어요.” 여다현의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덤덤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려놨어요. 두 사람이 서로를 잊지 못했으니 내가 물러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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