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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아니, 아니, 그 뜻이 아니라 내가 좀 오버해서 생각한 거야.” 추다희가 당황해하며 고개를 젓더니 가방을 쥐고 서둘러 나갔다. 강의동을 나간 지 30분도 안 되어 추다희는 익명 게시판에서 원하던 글을 봤다. 제목은 이러했다. [하경대 모 퀸카, 남자에게 눈이 멀어 백으로 대회 참가 기회를 따내다.] 이런 제목은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이 한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백으로 기회를 가로챘다는 주제는 순식간에 화제가 됐고 많은 이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며 구경했다. 추다희는 댓글을 일일이 확인해봤다. 대부분 그녀에게 유리한 반응이라 안도했다. 더 기뻤던 건 용제하가 마침내 친구 추가 요청을 수락했다는 것이었다. 바로 조금 전에. 그녀는 두려우면서도 걱정이 밀려왔다. ‘왜 하필 지금 수락했지? 허이설 때문인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지만 답장이 없었다. 긴장한 마음에 머릿속에 온갖 추측이 맴돌았다. 그녀는 방금 본 게시물을 용제하에게 보냈다. [제하야, 사람들이 왜 이설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어. 이설이 보면 속상할까 봐 걱정돼. 어떡하지?] 추다희는 이 문자로 용제하가 허이설을 신경 쓰는지 떠보려 했다. 그런데 화면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문자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집중이 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몇 초마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용제하는 답장이 없었다. 그녀는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허이설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 신경 쓴다면 왜 답장이 없는 건데?’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추다희는 문 앞에 멈춰 섰다. 부모님이 이미 학교에 와서 전과 신청서에 사인했다고 말하는 허이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추다희는 문 앞에서 크게 놀랐다. 허이설이 정말로 전과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문을 밀고 들어가 허이설을 쳐다봤다. “이설아, 너 진짜 전과할 거야?” 추다희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허이설은 고개만 끄덕였다. “응.” 추다희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대회는...” 허이설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누가 뽑히면 누가 나가는 거지, 뭐.” 어차피 그녀는 아니었다. 애초에 지원하지도 않았으니까. 허이설의 말투가 오후와 똑같이 덤덤한데도 추다희는 여전히 불안했다. 씻고 나서 침대에 올라 휴대폰을 꼭 쥐고 용제하의 답장을 기다렸다. 그런데 새벽이 되어도 답장이 없어 다시 문자를 보냈다. [아까 이설이 부모님이 학교에 와서 사인했고 전과 신청서도 제출했대.] 밤새 답장이 없었다. 추다희는 그가 잠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용제하가 욕실에서 나왔다. 얼굴에 물기가 묻어있었고 속눈썹이 젖은 채 문 쪽을 힐끗 봤다. 방 밖에서 두 사람이 게임하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아침부터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그는 문을 닫아 소음을 차단한 다음 서랍 위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전원을 켰다. 어제 최희원이 전화를 수십 통 넘게 했을 것이다. 받지 않아도 용호석 옆의 여자를 해결했는지 물을 게 뻔했다. 전화 받기 귀찮아 휴대폰을 꺼버렸다. 전원을 켜자 다른 사람의 문자가 쏟아졌는데 모두 허이설에 관한 내용이었다. 허이설... 그의 앞에서 가식 떨고 그를 가지고 놀던 사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평소엔 강의실에서 쪽지를 던지고 학교 길목에서 기다렸으며 식당에서 억지로 같은 테이블에 앉더니 최근에는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쪽지도 없고 길도 막지 않았으며 심지어 말도 걸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다. 정말로 그를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추다희의 문자를 본 그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허이설이 진짜 전과하려 한다니, 그날 한 말이 단순히 찔러본 게 아니었다. 그는 허이설과의 카톡 채팅창을 열었다. 전에 허이설은 거의 매일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용제하는 그제야 허이설이 며칠째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채팅창은 그녀가 고백했던 날에 멈춰 있었다. 살짝 놀라긴 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딱히 보낼 말도 없었다. 채팅창을 연 건 추다희가 그녀의 전과 얘기를 꺼내서였다. 갑자기 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문상준이 들어와 침대에 뛰어들려 했다. 용제하가 차갑게 흘겨보자 문상준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알았어. 서 있을게.” 엄형수가 옆 소파에 앉아 말했다. “이번 대회 명단 나왔는데 보고 깜짝 놀랐어.” 문상준이 손뼉을 쳤다. “나도. 제하 너 명단 봤어?” 용제하는 목에 걸친 수건을 잡아당겨 옆에 있는 세탁 바구니에 던지고는 휴대폰을 들어 담임 교수가 방금 올린 명단을 확인했다. 학생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반마다 두 명씩 참가했다. 용제하가 자기 반을 찾아 이름을 확인했다. 한 명은 그였고 다른 한 명은 뜻밖에도 추다희였다. “의외지? 추다희라니. 너랑 이설이 아니었어?” 문상준이 갑자기 입을 막았다. “윤가을이 했던 말이 진짜였어? 허이설이 널 버린 거야? 난 그냥 밀당하는 건 줄 알았는데.” 엄형수가 말했다. “내가 뭐랬어. 저 녀석 연애사 험난하다니까... 으악.” 두 개의 베개가 잇따라 날아갔다. 맞은 두 사람은 베개를 안고 용제하를 노려봤다. “아니, 우리가 밀당한 것도 아닌데 왜 베개 던지고 그래?” 문상준이 다시 베개를 침대에 던지자 용제하는 혐오 가득한 얼굴로 소파에 던져버렸다. 눈치 빠른 엄형수는 안고 있던 베개를 침대에 던지지 않고 소파에 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반응이 왜 이렇게 커? 너 원래 이설이 싫어했잖아. 귀찮다고도 했고.” “이설이 전과하면 같이 대회 안 나가도 되는데 오히려 잘된 거 아니야? 맨날 졸졸 따라다니던 애를 드디어 정리했으니 얼마나 시원해. 아니지, 네가 정리한 게 아니라 걔가 알아서 떨어져 나간 거네.” 문상준과 엄형수가 주거니 받거니 떠들어 용제하는 끼어들 틈도 없었다. 너무 시끄러워 내쫓아버렸다. 둘이 나가면서 한마디 던졌다. “왜 화를 내고 그래?” 쾅 하고 방 문이 닫혔다. 용제하는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손에 낀 다음 불을 붙이지 않고 허이설의 이름이 적힌 채팅창을 빤히 들여다봤다. 능력으로만 본다면 허이설이 그와 함께 대회에 나가는 게 가장 적합하지, 추다희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허이설과의 채팅창에 들어가 문자를 보냈다. [대회 안 나가?] 그런데 문자를 보내자마자 허이설의 프로필 사진이 회색 기본 이미지로 바뀐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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