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서윤성은 사복 차림이었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어린 기세는 여전히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
서윤성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고 이를 드러낸 남자를 내려다보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 다음에 또 조민아한테 손대는 거 보이면, 두 손 다 못 쓰게 만들 거야.”
남자는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고는 혼비백산했다. 바닥에 굴러가듯 연신 사과하며, 정신없이 도망쳤다.
“서 소장님은 아주 대단하네.”
조민아는 마음속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억지로 눌러 삼키고, 비웃음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이런 데까지 어쩐 일이야? 뭐 하러 왔지?”
그 말에 서윤성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며칠 동안 긴급 임무를 다녀왔어. 돌아오자마자 네가 여기서 사흘을 놀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서윤성은 조민아를 똑바로 바라봤다.
“장난도 정도가 있지. 이제 집에 가자.”
‘긴급 임무라...’
조민아의 심장이 바늘로 찌르듯 욱신거렸다.
‘한은별 때문에 칼까지 맞았던 그 임무겠지.’
조민아는 그걸 들춰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린 채, 차갑게 말했다.
“나 돌아가기 싫어.”
말을 마치자마자 조민아는 서윤성을 밀치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서윤성은 조민아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 그러고는 허리를 굽혀 조민아를 그대로 번쩍 들어, 가로로 안아 올렸다.
“서윤성, 뭐 하는 거야. 당장 놔!”
깜짝 놀란 조민아는 화가 나서 몸부림쳤다.
서윤성은 조민아의 발길질도 버둥거림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대로 로즈 클럽 뒤편에 조명이 희미하게 죽어 있는 그늘진 구석으로 걸어가 조민아를 차가운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곧바로 숨 돌릴 틈도 없이 뜨거운 입술이 덮쳐 왔다. 거부를 허락하지 않는 강압과 숨길 수 없는 조급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읍... 너 미쳤어? 놔!”
조민아는 고개를 돌려 피하려 했고, 두 손으로 서윤성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냈다.
하지만 서윤성은 한 손으로 조민아의 두 손목을 손쉽게 붙잡아 머리 위로 눌러 고정했다. 다른 손은 조민아의 뒤통수를 감싸 쥐고, 키스를 더 깊게 밀어붙였다. 숨결과 혀가 무례하게 파고들며 성을 함락시키듯 휘젓고 들어왔다.
“민아야...”
서윤성은 쉰 목소리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조민아를 불렀다.
“우리 며칠 동안 안 했는지 알아?”
서윤성의 입술이 조민아의 턱선을 타고 내려가 목덜미를 훑었다. 축축하고 뜨거운 흔적이 남았다.
“집에 안 갈 거면... 여기서라도...”
“싫어! 안 해. 서윤성, 오늘 나 건드리면... 널 평생 미워할 거야!”
조민아는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그보다 더 크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한은별의 약을 빨리 받으려고, 이렇게까지 다급한 건가? 이런 곳에서조차...’
서윤성은 조민아가 겁을 먹었다고만 여긴 듯, 숨을 헐떡이며 귀 옆에 낮게 속삭였다. 아마도 조민아를 달래려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겁내지 마. 지금은 어두우니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거야.”
“개자식...”
조민아의 눈가에 굴욕의 눈물이 맺혔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여, 서윤성의 어깨를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서윤성이 짧게 신음을 삼켰다.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낮게 웃었다. 서윤성의 웃음에는 체념 섞인 다정함이 스쳤다.
“넌 왜 이렇게... 들고양이 같은 거야.”
서윤성은 더는 조민아가 버틸 틈을 주지 않고 그대로 몸을 밀어 넣었다.
메마른 통증이 순간적으로 몰아치며 조민아의 몸이 바짝 굳었다. 조민아는 숨을 죽인 신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조금만 참아...”
서윤성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욕정이 배어 있었다. 곧 몸에 리듬이 붙기 시작했고 서윤성은 조민아의 몸을 계속해서 강하게 파고들었다.
“이 정도 아픈 것도 못 참으면... 나중에 애 낳을 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응?”
‘애를 낳는다고...’
그 말이 독을 바른 칼처럼 조민아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었다.
조민아는 고개를 확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가까운 서윤성의 얼굴이 선명했다. 조민아는 한 글자씩, 이를 갈며 말했다.
“서윤성, 사실대로 말해 줄게. 우리 엄마가 둘째를 낳을 때, 아빠가 바람피운 걸 알게 돼서... 피가 멈추지 않아 죽었어.”
조민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갈라졌다.
“그래서 난 아이를 별로 낳고 싶지 않아. 그래도 강요할 거야?”
그 말에 서윤성의 움직임이 순간 멎었다.
어둠 속에서 조민아는 서윤성의 눈빛이 잠깐 흔들리는 걸 본 것 같았다. 복잡한 감정이 스치는 듯했다.
하지만 정말 찰나였다.
“민아야, 다른 건 다 들어줄게.”
서윤성이 낮게 말했다.
“근데 이건 안 돼.”
서윤성의 목소리가 더 단단해졌다.
“아이 하나만 낳아 줘. 너를 닮은 아이 말이야. 제일 좋은 의료진이 네 곁에 붙어서 지켜 줄 거야. 너한테 무슨 일도 없게 할게.”
서윤성의 말은 너무 다정했고, 너무 그럴듯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사랑 고백처럼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조민아에게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살을 벗겨 내는 칼날 같은 존재였다.
서윤성은 조민아의 고통도, 절망도, 공포도 알아채지 못했다.
서윤성이 원하는 건 한은별이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그 순간, 조민아의 마음속에는 거대한 메스꺼움과 모욕감이 치밀어 올랐다.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서윤성을 밀어냈다.
“놔! 서윤성, 당장 놔!”
하지만 힘 차이 앞에서 조민아의 저항은, 달걀로 바위 치기처럼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조민아가 거의 절망에 잠기려던 그때였다.
바로 옆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그러자 두 사람의 움직임이 동시에 멎었다.
조민아가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한은별이 서 있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은별은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