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1화
이진아는 스스로가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이렇게 말했다.
“회암시로 돌아가면 요양원 문제는 내가 처리할게. 날 믿어, 은정아. 네 부모님의 원수는 나중에 기회 될 때 꼭 갚자.”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다른 일을 해도 일단 목숨이 붙어있어야 했다.
양은정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울었다.
“난 부모님이 날 버리고 도망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보다 동생을 더 사랑해서 동생만 데려가고 날 이곳에 남겨둔 건 줄 알았어요. 할아버지랑 나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말에 이진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남자인 동생을 더 사랑했을 수는 있어도 양은정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이제 와서 뭐라 한들 소용이 있을까?
“일단 나랑 같이 가자.”
양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 가요. 여길 떠나요, 우리.”
그런데 두 사람이 산 중턱에 다다랐을 때 양은정네 집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 불길이 어찌나 거센지 하늘 전체를 태울 듯했다.
아무래도 요양원 사람들이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불을 지른 모양이었다.
이진아는 산 중턱에 서서 양은정의 손을 꽉 잡았다.
“가자. 멈추지 말고.”
양은정은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그 집에 정이 있었고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었다.
이진아는 양은정이 몇 걸음 가다가 쓰러지려는 걸 보고는 참지 못하고 뺨을 때렸다.
“일어나서 제대로 걸어. 더 지체하면 우리도 여기서 죽어. 지금 탄알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네 할아버지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
손발에 힘이 풀렸던 양은정은 그녀의 말에 주변의 돌을 잡아 자신의 손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손가락 마디가 부러지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고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목소리는 무척이나 침착했다.
“가요, 언니.”
이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차 큰 그릇이 될 녀석이야.’
두 사람은 말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갔지만 뒤에서 쫓아오는 추격자들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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