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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학장님, 특허를 나라에 제출하고 의학 연구원에 들어가고 싶어요.” 학장은 흥분한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됐어, 하진 학생. 이 특허로 수백 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여긴 국가 기밀 연구실이라 최소 3년은 잠적해야 하고 열흘 후면 떠날 텐데 남자 친구, 가족들과 다시 상의해야 하지 않겠나?” “필요 없어요.” 성하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그 집에 그녀의 자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난해, 집에서 후원하던 불우 학생 강민영은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겪고 아버지의 손에 의해 우리 집으로 오게 됐다. 늘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성하진과 달리 강민영은 사람들에게 살갑게 굴었고, 성씨 가문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가족들의 보배둥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성하진의 소꿉친구인 약혼자와 남동생까지 그녀를 보물처럼 여기며 좋아했다. 강민영 때문에 엄마의 영정사진이 깨져도 아버지는 과거는 잊어야 한다며 아예 사당을 통째로 철거했다. 이제는 성하진이 어머니를 기리며 개발한 심장 스텐트 특허까지 빼앗으려 한다. 성하진의 동의를 강요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다 연인이 된 소꿉친구는 헤어지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물보다 진하다는 피도, 소꿉친구의 사랑도 고작 듣기 좋은 말 몇 마디를 이기지 못한다. 성하진은 이들과 싸우는 데 지쳤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집에 돌아와도 외로운 그녀와 달리 부엌에는 활기가 넘친다. 가족들은 성씨 가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강민영의 1주년을 축하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이 성하진의 생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남자 친구 허찬우와 남동생 성우진이 강민영의 양옆에 앉아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선물을 건네고 있다. 성하진의 차가운 얼굴에는 감정의 동요가 조금도 없었다. 막 부엌을 지나치려는데 아버지 성종구가 그녀를 불렀다. “학장님 찾아가서 민영이한테 특허를 넘기라고 했는데, 했어?” 성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 특허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니에요.”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성하진이 타협했다고 생각했다. 허찬우는 더욱 신이 나서 강민영을 껴안았다. “잘됐다. 나라에서 인정한 특허라 이것만 있으면 앞으로 진학이나 취업에 문제가 없을 거야. 축하해.” 성하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뒤돌아 걸어가려는데 강민영이 망고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성하진에게 건넸다. “하진 언니, 날 위해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 이건 언니 거야.” 사람들을 등진 강민영은 착한 가면을 벗은 채 얼굴에 도발이 가득했다. 승자가 된 듯 오만한 기세에 성하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치워.” 며칠 전 함께 건강 검진 결과를 받았기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강민영은 그녀의 망고 알레르기를 알고 있었다. “하진아, 왜 민영이한테 성질을 부려? 내가 특허를 주라고 한 거니까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허찬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하진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강민영은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하진 언니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 탓하려면 날 탓해. 이 집에는 애초에 내 것이 하나도 없잖아. 하진 언니가 항상 내 물건이 더럽다고 싫어하는 거 알아. 미안해, 하진 언니. 내가 그렇게 싫으면 오늘 바로 나갈게. 난 기생충이 되고 싶지 않아. 그냥 아저씨 은혜에 보답하고 싶을 뿐이야. 미안해...” “민영 누나, 여기가 누나 집이야. 누가 쫓아내도 내가 반대야.” 성우진이 곧장 그녀를 끌어당기자 성종구도 화를 내며 젓가락을 내팽개쳤다. “이렇게 기쁜 날에 네가 와서 분위기를 다 망쳤잖아. 대체 언제 철 들래? 이 성종구가 어쩌다 너처럼 속 좁고 제멋대로인 자식을 낳았을까. 당장 케이크 먹고 민영이한테 사과해.” 혐오가 가득한 친아버지의 눈빛을 바라보며 이미 막돼먹은 이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지만 그래도 성하진은 저도 모르게 손이 떨리며 커다란 손이 심장을 꽉 움켜쥐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쥐어짜며 말했다. “싫다면요?” 하지만 말을 꺼내기 바쁘게 매서운 손이 얼굴에 내리꽂힐 줄이야. 이내 성종구는 분노에 사로잡힌 듯 손을 뻗어 케이크 조각을 집어 입에 쑤셔 넣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성하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입술이 마비되고 숨쉬기 힘들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졌다. 강민영은 긴장한 척하며 말했다. “하진 언니, 왜 그래? 구급차 부를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연기하는 거야. 식사 계속하자.” ... 귓가에 울리는 소리는 불협화음과 혼돈이었다. 성하진은 거의 기다시피 침실로 들어가 서랍을 열고 약을 입에 넣은 다음 마지막 힘을 다해 119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공허한 표정으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간은 금방이다. 이제 열흘만 더 버티면 이 차가운 집과 썩어빠진 사람들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남보다 못한 혈육도, 위선적인 연인도 다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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