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성하진이 동의 없이 친구들 앞에서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을 때 그는 화가 나서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허찬우는 결코 점잖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저 성하진과 사귈 때 얼음장처럼 차가웠을 뿐이다.
성하진은 역겨움이 밀려와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갔다.
문을 나설 때 허찬우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강민영을 밀쳐냈다.
그제야 사람들도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 강민영은 서둘러 뒤를 쫓아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진 언니, 방금 일어난 일은 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손 놔.”
성하진은 그녀의 해명을 듣고 싶지 않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강민영은 여전히 그녀를 붙잡은 채 점점 더 힘을 주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넘어지면 가족들이 네가 밀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 말과 함께 강민영은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과장 섞인 움직임으로 뒤로 넘어져 식당의 유리창이 통째로 깨졌다.
그 소리에 성씨 가문 사람들이 달려왔다.
깨진 유리창에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강민영의 모습만 보았다.
“성하진, 미쳤어? 민영 누나 죽일 생각이야?”
성우진이 소리를 지르며 강민영을 껴안았고, 성하진이 말하기도 전에 성종구가 뺨을 때렸다.
“망할 것.”
성하진은 바닥에 쓰러져 부러진 이빨과 함께 피를 뱉었다.
그녀의 이 하나가 부러진 거다.
해명하려고 입을 벙긋했지만 산 채로 잡아먹을 듯한 분노와 증오가 담긴 가족들의 눈빛에 하고 싶었던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혈육들은 외부인인 강민영만을 믿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고 역겨운 언행이라고 여겼다.
강민영은 성우진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말했다.
“하진 언니, 내가 미우면 그냥 말해. 당장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게. 찬우 오빠를 뺏었다고 날 원망한다면 돌려줄게. 언니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때리지 마...”
강민영의 연기에 성씨 가문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성하진, 강민영한테 날 뺏겼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야?”
허찬우는 성하진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성하진은 멍하니 그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웃으며 한입 가득 피를 토했다.
사람의 마음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차갑게 식으면 웃음이 나오나 보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는 성하진을 보며 그녀에 대한 허찬우의 실망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거 알아? 난 이제 네가 하나도 안 미워. 한때 눈이 멀어서 너같이 독한 여자를 좋아했던 날 원망하지. 빌어먹을,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뒤돌아 강민영을 안은 채 성씨가문 사람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하진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주변을 지나가던 행인들은 모두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바닥에 누워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고 구멍이 숭숭 뚫려 더 이상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가득 채운 것은 원망이나 분노가 아니라 극도로 무감각해진 초연함이었다.
괜찮다. 사흘만 지나면 다시는 저 빌어먹을 인간들을 마주할 일이 없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에 가득 찬 웃음소리가 뚝 멈췄다.
모두가 어떻게 뻔뻔하게 돌아오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다리가 부러져 문밖으로 던져진 강아지가 불구의 몸을 끌고 다시 기어들어 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