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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신호를 기다리며 잠시 멈춰 선 차 안, 고인성은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송유리가 불쑥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근데 인성 씨, 아까까지만 해도 밤에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오후에 벌써 온 거예요?” “시찰 끝나고 회의가 갑자기 취소돼서 그냥 들어왔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딘가에서 여전히 비행기 안에 있을 명서원의 얼굴이 떠오를 법했다. 기업 총수가 갑자기 빠지면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언제나 비서실장의 몫이니까. 고인성이 자리를 뜨는 순간, 그 모든 책임은 명서원이 떠안아야 했다. 정말이지, 고된 ‘을’의 삶이었다. 고인성의 말에 송유리가 다시 물었다. “근데 어떻게 제가 오늘 연극 무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총장님이 초대하셨어. 원래 안 가려다가... 마침 근처 지나가서 잠깐 들른 거야.” 그 말을 들은 송유리는 살짝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지나가다가? 인성 씨는 참 이상해. 그렇게 많은 우연이 어디 있다고... 항상 타이밍까지 맞춰서...’ 항상 꼭 맞는 타이밍에 꼭 맞는 이유로, 묘하게 얄미웠지만 묘하게 고맙기도 했다. 적어도 오늘 자신이 준비한 무대를 함께 본 사람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송유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곡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인성은 굳이 묻지 않아도 그녀가 지금 꽤 행복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고인성이 말을 꺼냈다. “모레 시간 비워둬. 가족 모임이 있어.” 그 말을 들은 송유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대고 앉아 있던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지금까지는 혼인신고서 한 장으로 끝난 ‘계약’ 같았지만 이제 진짜 현실이, 본격적인 ‘미션’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다소 긴장된 눈빛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실수 안 하게 잘할게요.” 고인성은 그런 그녀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렇게까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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