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장
강하나는 박지헌인 줄 알고 그와 다시 이야기를 나눌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고개를 들어보니 전혀 예상 밖의 얼굴이 나타났다.
트렌치코트를 벗은 박재헌은 검은 셔츠 차림이었다. 빨강과 검정이 섞인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헝클어진 은빛 머리칼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캐릭터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스무 살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런 남자에게 푹 빠졌었다. 한 번 보면 며칠이고 잊을 수 없었고 그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취향도 변했고 이제는 충분히 면역되어 있었다.
강하나는 그를 힐끔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거예요?”
박재헌은 계단 난간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손가락마다 낀 여덟 개의 반지가 난간에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왜, 이 계단 네 거야? 난 못 오게?”
“또 왜 이렇게 까칠해요? 내 간식 먹어 놓고는 고맙다는 말도 없고.”
강하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쳇, 예전엔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너한테 간식 사줬는데, 그때 넌 나한테 고맙다고 한 적 있었어?”
또 과거 얘기였다. 강하나는 못 들은 척하며 몸을 돌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박재헌이 그녀보다 보폭이 넓다 보니, 금세 그녀 옆에 걸어왔다. 계단은 좁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내려가기엔 어색할 정도였다.
강하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 그가 먼저 가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의도를 아는 듯, 똑같이 속도를 늦추며 발걸음을 맞췄다.
강하나는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박재헌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어. 지헌이랑 결혼한 지 3년 동안, 너 아버지한테 네가 감독이라는 사실 한 번도 말 안 했더라?”
“내가 알리고 싶으면 알리고, 숨기고 싶으면 숨기는 거지. 그게 재헌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박재헌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상관없다면 내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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