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어둠 속에서 진나연은 자신의 팔뚝을 꽉 깨물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두려움과 절망이 독사처럼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 것 같았지만 끝까지 견뎌냈다.
차가운 관 구석에 웅크린 채 몸 위를 기어다니는 뱀들과 함께 한 세기처럼 길게 느껴지는 밤을 보냈다.
다음 날 관 뚜껑이 열리며 찌를 듯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덤구덩이 가장자리에 서 있는 민도준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진나연이 관에서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밤새 감기라도 걸린 거야?”
진나연은 고개를 숙인 채 온몸을 살짝 떨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도 민도준은 믿지 않을 테고 설령 믿는다 해도 상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진나연은 이미 알았다.
민도준은 진나연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더 이상 묻지 않고 한마디만 했다.
“의식이 끝났으니 우리 재혼하러 가자.”
바로 그때 민도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심수아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민도준은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이내 진나연을 향해 말했다.
“나연아, 수아 쪽에 급한 일이 생겼어. 가봐야 할 것 같아. 재혼 수속은... 네가 구청에 가서 해줘, 알겠지?”
진나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구청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 이혼에 성공했는데 다시 재혼을 하겠는가?
그날 밤, 아주 늦게야 집으로 돌아온 민도준은 외투를 벗으며 한마디 했다.
“재혼 수속은 다 끝냈어?”
소파에 앉아 있던 진나연은 멍하니 앞만 보며 ‘응’하고 대답했다.
그제야 안도한 민도준은 다가와 진나연의 손을 잡으며 미안한 듯 말했다.
“나연아, 지난 며칠 동안 네가 고생 많았다는 거 알아. 오늘은... 우리 결혼기념일이야.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어. 보상이라고 생각해 줘, 응?”
화려하게 차려입은 민도준은 아무런 표정도 없는 진나연을 데리고 호텔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향기로운 향수 냄새와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민도준은 연회 내내 진나연을 아낌없이 챙겼고 그 모습에 자리한 모든 여성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진나연은 그저 무감각할 뿐이었다.
민도준의 모든 다정함과 배려는 지금 진나연의 눈에 얼음장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연회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홀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화려하게 차려입은 심수아가 환하게 웃으며 등장했다.
“도준 오빠, 나연 언니, 오늘 두 사람 결혼기념일이라면서? 특별히 두 사람을 위해 불꽃놀이를 준비했어. 옥상으로 꼭 가서 봐!”
진나연은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안 가.”
웃으며 한마디 한 심수아는 목소리만큼은 아주 달콤했지만 말은 뼈를 찌르듯 차갑기 그지없었다.
“나연 언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설마 무슨 짓을 하겠어? 게다가 도준 오빠도 함께 있는데.”
민도준도 진나연의 손등을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가자, 한번 구경하자.”
진나연은 결국 민도준에게 팔이 잡혀 옥상으로 끌려 올라갔다.
밤하늘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화려한 불꽃이 터지며 반짝였다.
하지만 진나연은 너무 추워 아름다움을 만끽할 새가 없었다. 어찌나 추웠는지 몸까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민도준은 진나연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부드럽게 말했다.
“추워? 네 외투 가져올게.”
그러더니 몸을 돌려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민도준이 자리를 뜨자마자 심수아가 진나연 곁으로 다가오더니 웃으며 물었다.
“나연 언니, 이 불꽃놀이, 어때? 예쁘지?”
진나연은 심수아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심수아가 갑자기 그녀의 귀 가까이 다가오더니 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악마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네 엄마 유골로 특별히 만든 불꽃놀이야.”
고개를 홱 돌린 진나연은 순식간에 눈동자가 어두워졌고 눈에는 경악의 빛이 스쳤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말 안 믿을 줄 알았어.”
의기양양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낸 심수아는 동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봐, 여기 제작 과정도 다 있어.”
영상 속에는 심수아가 사람들을 지휘해 김숙희의 무덤을 파헤친 뒤 유골을 꺼내 그것을 불꽃놀이 통에 섞어 넣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심수아는 심지어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말하기까지 했다.
“이 늙은이도 한번 화려하게 빛나게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