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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차성 그룹. 이주성이 서명을 마친 이혼합의서를 들고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차도겸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서명했어?” “네, 그렇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고?” “윤라희 씨는 아무 재산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차도겸은 두어 초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건 햇살이 스며들던 아침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아침 햇살처럼 투명하고 맑았던 그 미소. 하지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었다. 그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모든 건 결국 연예계라는 더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차도겸은 합의서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그저 시선을 돌려 다시 서류를 들여다보며 묵묵히 업무를 이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주성은 윤라희가 서명할 때의 그 조용하고 평온한 표정이 자꾸 떠올라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어젯밤 일은 따로 조사해 보는 게 어떨까요? 제가 보기엔 윤라희 씨가...” “필요 없어. 중요하지도 않고.” 이주성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곧 깨달았다. 애초에 신경 쓰지 않으니 중요할 이유도 없었다. 윤라희가 정말 바람을 피웠든 아니면 누군가에게 당했든 어차피 결과는 달라질 수 없었다. ... 윤라희는 예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과거 스캔들이 터졌을 때 위약금이며 배상금으로 모든 재산을 쏟아부은 끝에 그녀 명의로 되어 있던 부동산도 전부 정리해야 했다. 유일하게 남은 건 아버지가 남겨준 이 아파트 한 채뿐이었다. 그녀에게 부모님의 죽음은 아직도 생생한 악몽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단 한 번도 이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두 해가 넘도록 외면했던 문을 다시 연 지금, 모든 게 그대로인데도 마음은 낯설기만 했다. 돌아오고 나니 허전함과 고통이 뒤섞여 가슴이 조여왔다. 집 안을 다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그 사이 인터넷에서는 윤라희가 차씨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윤라희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윤라희 이혼, 빈손으로 쫓겨나’라는 키워드가 떠 있었다. 조회수는 이미 2천만을 넘었고 댓글 수 역시 6만 개를 돌파했다. 그 수치는 지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와 ㅋㅋ 드디어 윤라희도 끝났네. 속 시원해.] [꼴 좋다. 그렇게 악착같이 재벌가 들어가더니 결국 쫓겨났구나.] [결국 2년 동안 공짜로 몸만 바친 거네? 진짜 최악의 흑역사다.] [이런 여우 같은 인간은 딱 그 꼴이 어울려. 인과응보야.] [저딴 년은 유흥가에서 다시 시작하겠지. ㅋㅋㅋ] 댓글은 볼수록 가관이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저주와 비난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윤라희는 조용히 앱을 닫고 연락처를 열어 한 번호를 눌렀다. 무려 2년간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 그녀의 전 매니저 주강혁이었다. “윤라희?” 확신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주강혁은 예상치 못한 연락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응, 나야.” 윤라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라희야, 갑자기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오빠, 나 복귀하고 싶어. 스케줄 잡을 수 있을까?” “뭐라고?” 주강혁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소름 끼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윤라희...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진짜 그게 뭔 말인지 알고 하는 거야?” 온갖 악플에 시달리며 매장당한 사람이 복귀를 꿈꾸다니, 주강혁은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솔직히 윤라희가 지옥 같은 여론 속에서 멀쩡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알고 있어.” 주강혁은 속이 바짝 타들어 가 맨발로 방 안을 이리저리 오가며 안절부절못했다. “일단 진정해. 너 지금 상황 뻔히 알잖아. 복귀는 현실적으로 힘들어.” 이건 현실성이 없는 수준을 넘어 아예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 2년 전, 이른바 ‘침대 사건’으로 윤라희는 순식간에 전 국민의 비난을 받으며 연예계 최초로 모든 방송사에서 출연 정지를 당한 인물이 됐다. 연예계에서 사라져야 할 1순위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채 쫓기듯 떠났고 명예는 바닥을 쳤다. 대중 앞에서는 죄인처럼 고개조차 들 수 없었고 결국 소속사마저 등을 돌리며 그녀는 공식적으로 퇴출당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불륜 스캔들에 이어 재계 1위 가문에서 쫓겨난 낙인까지 추가된 마당에 다시 복귀를 꿈꾼다는 건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윤라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토록 냉정했던 적도, 이토록 단호했던 적도 없었다. “강혁 오빠, 나 좀 도와줘. 이제 나 도와 줄 사람은 진짜 오빠밖에 없어.” 그녀의 간절한 목소리에 주강혁의 마음은 또 한 번 흔들렸다.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고 동시에 복잡한 감정이 치밀었다. 윤라희는 주강혁이 처음으로 맡은 연예인이었다. 무명의 신입 매니저였던 그가 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것도 모두 윤라희 덕분이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윤라희는 그가 처음부터 지켜봐 온 사람이었다. 2년 전, 그 일이 터졌을 때 그는 누구보다 안타까워했고 아쉬움도 컸다. 하지만 그게 바로 이 바닥이었다. 잔인하고, 더럽고, 어둡고, 비열한 이곳에서 버틸 힘이 없으면 결국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라희야, 내가 돕기 싫어서가 아니라 진짜 방법이 없어. 요즘 인터넷 안 봤어? 넌 이미 완전히 매장됐어. 나야 그냥 전 매니저일 뿐인데,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알아. 그래도 회사 쪽에 한 번만 얘기해줘.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 “2년 전에 네가 회사에 얼마나 큰 손해를 끼쳤는지 기억하지? 윗선에서 널 다시 밀어줄 일은 없어. 그리고 지금 분위기로는 밀어주고 싶어도 밀 수가 없고.” “괜찮아. 나 밀어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복귀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왜 하필 꼭 이 바닥이어야 해? 연기 말고도 다른 길이 있잖아. 경제적으로 힘들면 나한테 말해. 내가 도와줄게.” 윤라희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왜 굳이 다시 이 바닥으로 돌아오려 하냐고? 그 인간이 아직 이 안에 있으니까.’ 그 끔찍했던 고통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길 수는 없었다. 아이를 잃은 아픔도 부모님을 잃은 슬픔도 그 모든 걸 그냥 흘려보낼 순 없었다. 반드시 복수해야 했다. 반드시 하유선이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했다. “내가 넘어진 곳이 여기라면 다시 일어설 곳도 여기여야 해. 오빠, 나 세 살에 아역으로 데뷔했고 열여덟에 강제로 은퇴당했어. 내 인생의 4분의 3을 이 바닥에서 보냈어. 이 바닥을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잘 맞는 사람도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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