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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윤라희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상황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모두가 허를 찔린 채 미처 대비할 시간도 없었다. 소속사는 윤라희를 키우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인력, 자원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슈퍼스타라 불릴 만한 위치에 올려놨다. 하지만 그녀의 돌연한 퇴장은 그 모든 투자를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손실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고 회사 고위층은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물론 그들은 새로운 배우를 다시 키울 능력도, 시간도 있었지만, 단 하나 윤라희는 절대 다시 만들어낼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윤라희의 전담 대역 배우였던 조서영이 등장했다. 그녀는 윤라희와 70%쯤 닮은 외모에, 수년간 대역으로 쌓아온 노하우를 활용해 완벽하게 ‘윤라희’를 흉내 냈다. 그 모습이 고위층의 눈에 들어왔고 결국 조서영은 윤라희의 이름과 이미지, 심지어 그녀의 커리어 노선을 통째로 이어받으며 데뷔하게 됐다. 소속사의 홍보팀은 조서영 띄우기에 총력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윤라희를 끌어내리며 그녀가 현장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비협조적이었다는 루머를 흘렸고 이전까지의 노출 없는 장면들은 전부 조서영이 찍었다는 말도 퍼뜨렸다. 심지어 측면 얼굴이 나오는 컷마저도 조서영이 대신한 거라는 사실무근의 말까지 돌았다. 급기야는 윤라희의 연기 성과 중 절반은 조서영의 몫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윤라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 영화조차 절반 이상을 조서영이 대신 연기했다는 헛소문까지 퍼졌다. 결과는 뻔했다. 윤라희의 이름을 밟고 일어선 조서영은 일약 스타가 되었고 진짜 주인공은 무대 아래로 밀려났다. 윤라희는 눈을 감고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손톱 끝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무너졌던 그날, 이 업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이에나가 되어 그녀의 살점을 뜯어갔다. 조서영이 빼앗아 간 건 단순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서사 그리고 수년간 쌓아온 팬들이었다. 팬들이 실망과 분노로 등을 돌렸을 때, 조서영은 윤라희의 이름을 앞세워 데뷔했다. 그 덕분에 윤라희가 피땀으로 일군 모든 것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다. 조서영이 오디션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들먹대던 여배우들은 순식간에 조서영 주위로 몰려들었다. “와, 서영 언니도 오디션 보러 오신 거예요? 우린 이제 가망 없겠다...” “같은 드라마에서 언니랑 연기할 수 있다면 전 단역이어도 감사해요!” “언니 진짜 예뻐요... 저 언니 팬이에요. 혹시 사인 좀...!” 칭찬 세례에 둘러싸인 조서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단정하게 웃었다. 겸손한 말투에 전혀 거만함도 없었다.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저도 운 좋게 몇 작품 했을 뿐이에요. 다들 정말 훌륭한 배우들이잖아요.” 하지만 그런 말 속엔 여유와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고 곧이어 누군가가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너무 겸손하시다니까요. 실력도 외모도 다 갖췄잖아요.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온 건 전부 언니 실력이에요. 어떤 사람처럼 누군가의 자리에 기생해서 뜬 것도 아니고요...”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의미심장하게 윤라희를 바라봤다. 마치 보기만 해도 역겨운 걸 본 듯한 눈빛이었다. ‘예쁘면 뭐 하냐. 제대로 노력도 안 하고 요령만 부리다가 두 번이나 자폭했잖아. 자업자득이지.’ 지금 윤라희는 바닥 끝까지 추락했고 반면 그녀의 대역이었던 조서영은 노력 끝에 정상에 올랐다... 인생 참 아이러니했다. 윤라희는 대기실 한복판에 서서 주변 사람들의 찬사 속에 둘러싸인 조서영을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분명 나락으로 떨어진 건 자신인데, 이상하게도 더 위에 서 있는 쪽은 오히려 자신인 것만 같았다. 조서영은 처음엔 순간 얼어붙었다. 윤라희가 이 자리에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곧 정신을 차린 조서영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친근한 척 윤라희의 손을 잡았다. “라희야, 오랜만이다. 요즘 잘 지내?” 윤라희는 말없이 손을 뿌리쳤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차갑게 돌아섰다. 그녀의 반응에 조서영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살짝 서운한 얼굴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참견을 시작했다. “서영 언니, 그냥 신경 쓰지 마요. 몸이나 파는 여자 주제에 잘 난 척은.” “그러니까요. 예전에 본인이 무슨 짓 했는지는 생각도 안 하나 봐요. 언니가 나서서 수습 안 했으면 레온 엔터는 진작 망했을걸요? 그런 배은망덕한 애한테 뭘 기대해요. 역겨워, 진짜.” “자기 처지도 모르고 또 대스타인 줄 아나 봐. 가소롭긴, 퉤.” 조서영은 눈가를 매만지며 억울한 듯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순간, 그 눈빛은 차갑게 변해 있었다. ‘윤라희, 넌 정말 변함없구나. 여전히 세상 물정 모르고. 네가 아직도 그 시절 윤라희라고 착각하니?’ 오디션은 곧 시작됐다. 스태프가 대기실 앞에 나와 명단을 불렀다. 배우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다음은 조서영 씨, 윤라희 씨.” 그 이름이 불리자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했다. 다들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찾은 눈빛이었다. 촬영장 안은 조용했다. 감독, 조감독, 프로듀서, 조명팀, 스태프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들어서자, 모두가 어딘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두 사람 사이에서 번갈아 옮기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둘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조서영이 한때 윤라희의 대역으로 쓰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난 2년간 모방에 몰두한 결과, 지금은 겉모습만 보면 여덟 할은 닮은 수준이었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친자매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윤라희는 민낯이었지만 깨끗한 백옥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조막만 한 얼굴에 부드러운 눈썹까지, 마치 동양화 속 여인이 현실로 걸어 나온 듯했다. 담백한 매력에 고혹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반면 조서영은 진한 화장에 평평한 눈썹, 도드라진 턱선까지,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꾸며진 티를 냈다. 윤라희 옆에 서는 순간 마치 어디서 본 듯한 SNS 셀럽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본판’과 ‘짝퉁’의 차이가 분명해졌다. 외양이 아무리 화려해도 진짜는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촬영장 안에 있던 관계자들도 절로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참 아깝네. 스캔들만 아니었어도...’ 이 얼굴로 뜨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 스캔들이 너무 치명적이었다. 지금 윤라희를 쓰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사실 조서영은 오늘 그저 형식적으로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연 자리는 이미 조서영으로 내정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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