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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강인아의 능력으로 주씨 가문을 따돌리는 일은 아주 쉬웠다. 강인아가 계산이 선 미소를 지었다. “그 인간들을 미끼에 걸리게 하는 데에는 내 목적이 따로 있어.” 지현우가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무대 쪽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졌다. 누군가가 외쳤다. “누가 갑자기 쓰러져 죽은 것 같아!” 요란하고 자극적인 음악이 뚝 끊겼고 춤추며 들뜬 남녀들은 순식간에 무대에서 흩어졌다. 젊은 여자가 쓰러진 남자 곁에 쭈그려 앉아 목 놓아 울었다. 클럽 직원들이 재빨리 병원으로 응급 전화를 걸었다. 강인아는 마스크를 쓰고 인파로 다가가 두 손가락으로 환자의 손목을 집어 맥을 짚었다. 환자의 숨은 미약했고, 얼굴은 보랏빛으로 질려 바닥에 누운 모습이 거의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여자는 겁에 질려 울먹였다. “명호야, 정신 차려. 얼른 일어나. 나 무섭게 하지 마.” 강인아가 성가신 듯 나무랐다. “아직 안 죽었어요. 울기는 왜 울어요.” 여자는 놀라 울음이 콱 막혔다. 강인아는 맥을 보며 물었다. “이 사람 심장병 있어요?”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아까까지만 해도 춤추느라 신났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어요. 내가 어찌 된 거냐고 묻기도 전에, 그, 그게 이렇게 됐어요.” 강인아는 더 묻지 않고 남자의 셔츠를 확 뜯어 가슴을 드러냈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회전 펜을 가볍게 털어 펜 끝에서 가늘고 날카로운 은침을 쏟아냈다. 수많은 눈길 앞에서 강인아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은침을 남자의 여러 혈 자리에 꽂아 넣었다. 시끌벅적하던 클럽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모두가 궁금해했다. 이 늘씬한 몸매에 마스크를 쓴 여자가 대체 무엇을 하는지. 지현우가 강인아를 따라와 군중에게 지시했다. “다들 좀 물러서요. 공기 흐르게 하고. 서원아, 구급차는 얼마나 남았어?” 지목된 직원이 급히 대답했다. “길어야 5분입니다.” 은침이 차례로 들어가자, 바닥에 누운 남자가 예고 없이 한 번 콜록 기침을 했다. 피 한 모금이 뿜어져 나와 주변에서 짧은 비명이 연달아 터졌다. 남자는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더니 멍한 표정으로 둘러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클럽 밖에서 구급차 사이렌이 울렸다. 강인아는 3초도 되지 않아 남자 몸의 은침을 모두 거두어들였다. 의료진이 몰려와 남자의 상태를 물었다. 부축을 받고 일어난 남자는 가슴팍을 더듬었다. “방금은 여기가 숨이 막힐 정도였는데 지금은 덜 답답합니다.” 누군가가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 “저 마스크 쓴 여자는 의술을 아네.” “어? 그 여자 어디 갔지?” 주변 사람들이 강인아를 찾으려 했을 때는 이미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날은 백제석의 사십구재였다. 백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규례에 따라, 전임 가주가 세상을 떠나면 현임 가주가 백씨 가문 사람들을 이끌고 백씨 일가의 사설 묘지에 가서 제사를 올려야 한다. 묘원에는 백씨의 조상 대대로의 선영이 모셔져 있었고, 산이 둘러싼 명당으로 풍수가 뛰어난 몇몇 풍수 대가들이 그들을 위해 골라 준 음택의 보금자리였다. 묘원 입구에는 검은 고급 차들이 수백 대나 줄지어 서 있었다. 엄숙한 올블랙 차림의 백세헌이 맨 앞에 섰고, 좌우에는 한서준과 문해성 두 명의 측근 비서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뒤에는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20명이 수행했다. 그 뒤로는 수백 명의 백씨 일가 모두 검은 옷차림으로 정연히 서서 제례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의 한마디 지시에 맞춰 비석 앞의 백세헌이 무릎을 꿇고 고 고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무릎을 꿇자 뒤의 수백 명도 와르르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 제례는 번잡하지 않았다. 머리를 조아리고, 향을 올리고, 종이를 살포시 흩뿌렸다. 모든 절차는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사회의 “예식 종료”라는 한 마디와 함께 제사가 끝났고, 묘원 전체는 흩날리는 지전으로 자욱해졌다. 키 188cm에 늘씬하고 준수한 백세헌은 전장의 검은 수트가 그의 살벌한 기운을 더해 주었다. 그는 왕처럼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가부장은 이미 아시겠지만, 가친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사고였지만 속내를 파고들면 이런 일이 백씨 가문의 가주에게 일어날 일이라고 나는 믿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묵직했고 입에서 떨어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자리한 모든 이의 귓속에 또렷이 박혔다. 그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묘원의 사람들을 굽어보았다. “가친을 땅에 모시던 날, 나는 맹세했습니다. 사십구재가 오기 전에 해코지한 진범을 반드시 법 아래 세울 것이라고.” 사람들은 놀라움에 숨을 삼켰고, 전임 가주를 죽음으로 몰아간 범인이 대체 누구인지 마음속으로 분분히 추측했다. 백세헌의 날카로운 시선이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스스로 자수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그때의 죄행을 인정하면 족벌의 규율은 면하게 하고 가벼이 처분하겠습니다.” 돌아온 것은 기묘한 고요뿐이었다. 가주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를 누가 감히 짊어지겠는가. 아무도 나서지 않자 백세헌이 싸늘하게 웃었다. “기회는 주었고, 단 한 번뿐입니다. 놓치면 내가 정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가 문해성을 향해 눈짓했다. 문해성이 멀지 않은 쪽을 향해 손가락을 탁 튕겼다. 잠시 뒤, 건장한 경호원 두 명이 중년 남자 하나를 이쪽으로 비틀어 끌고 왔다. 그중 한 사람이 그의 오금에 발길질을 하자 남자는 망신스럽게 무릎부터 땅에 떨어졌다. 곧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았다. 전임 가주 백제석의 운전기사였다. 기사는 데굴데굴 굴러오다시피 하여 백세헌에게 엎드려 매달렸다. “회장님, 저, 저는 아는 게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제발 살려 주세요. 봐주세요.” 그러나 백세헌에게 닿기도 전에, 기사는 문해성의 발에 등짝이 찍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백세헌은 그의 애걸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기사는 짓눌린 채 꼼짝도 못 하고 연신 울부짖으며 구차하게 빌었다. 튀어나온 침방울이 비석의 영정 사진에 닿을 지경이었다. 백세헌이 말했다. “시끄럽네.” 문해성이 손바닥을 한 번 휘둘러 손쉽게 그의 턱을 툭 빼 버렸다. 턱이 빠지자 기사는 공기 섞인 신음만 낼 뿐이었다. 이 모든 광경을 본 백씨 집안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이 자리에서 감히 더 말 붙일 자가 없었다. 백세헌은 비단 손수건을 꺼내 아버지 사진을 조심스레 닦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 예전에 모셨던 주인 곁으로 따라가시죠.” 말이 떨어지자 한서준이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백제석의 거대한 묘비 옆에 어느새 파 놓은 구덩이가 드러났다. 기사의 겁먹은 비명이 터지는 사이, 그는 문해성의 발길질에 구덩이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백세헌이 가볍게 명했다. “주인을 지키지 못했으니 생매장해야죠.” 기사는 간담이 서늘해져 발버둥 치며 뭔가를 말하려 했다. 그러나 열몇 명의 경호원은 그에게 한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삽을 들어 구덩이로 흙을 잇달아 부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백씨 집안사람들은 모두 가슴이 터질 듯 두려움에 질렸다. 역시 어르신이 손수 길러낸 후계자였다. 이 기세와 수단은 생전에 어르신보다도 더 무서웠다. 그때 누군가가 군중 속에서 대담하게 중얼거렸다. “사람을 생매장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백세헌의 눈매에 음울한 기운이 번졌다. “둘째 형님이 나한테 사람 됨을 가르치겠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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