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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검은색의 프로필 사진에 이름은 심동하로 되어 있었다. 고지수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심동하가 Rita가 바로 고지수이자 그녀라는 걸 알게 된 건 아닐지 의심했다. 심동하는 고지수에게 편견이 있었다. 만약 심동하가 Rita가 그녀라는 걸 알게 된다면 명안과 일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고지수는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녀는 심동하의 날카로우면서도 압박감 넘치는 시선 아래 자신의 정체가 까발려질까 봐 걱정되어 감히 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잠시 뒤 고지수가 심동하에게 답장을 보냈다. 심민지가 보낸 메시지 때문에 알림음이 다시 한번 울리자 심동하의 의문 어린 시선이 그제야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잠시 뒤, 고지수는 휴대전화를 무음 모드로 설정했고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심동하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심동하입니다. 어머님과 의논한 끝에 3개월 동안 진심을 숨기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최대한 빨리 이혼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다른 곳에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주 간결한 메시지였다. 그녀를 향한 경고가 분명했다. 고지수가 답장을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관계를 이용할 생각도 없고, 다른 짓을 벌일 생각도, 이모를 이용할 생각도, 넘보지 말아야 할 걸 넘볼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껏해야 명안과 일할 기회와 명안의 월급을 넘볼 것이다. 문자를 보낸 뒤 고지수는 심동하가 휴대전화를 보는 걸 보았다. 그러나 그는 고지수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했다. “대표님.” 고지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제품 홍보용 사진 말입니다. 구체적인 부분은 대표님과 논의하면 되는 걸까요?” 심동하의 시선이 고지수의 얼굴에 잠시 머무르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는 자신의 카톡 QR코드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카톡 추가해도 될까요?” 정중하게 묻는 것 같지만 은근히 압박감이 느껴졌다. 고지수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QR코드를 스캔한 뒤 그를 추가했다. 심동하는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더니 이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말했다. “이번 주 토요일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주말을 보내지 않아도 되나요?” 고지수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전 이미 이혼했습니다. 아이도 없고요.” 심동하는 그 뒤로 말없이 비행기에서 내렸고 고지수는 티 나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동하가 카톡을 추가하려던 이유는 그녀에게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를 의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가정 상황까지 알아보려고 했다. 다행히 고지수에게는 카톡 계정이 두 개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 심동하에게 들켰을 것이다. 고지수가 공항을 나서는데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심동하가 메시지를 보낸 탓이었다. [Rita 씨, 앞으로는 이분과 의논하시면 돼요.] 고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심동하는 조금 전에 그녀를 시험해 본 것이 맞았다. ... 고지수는 호텔에서 하루 쉰 뒤 다음 날 차를 타고 별장으로 향했다. 장민영이 그녀를 보고 놀랐다.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민준이랑 재우는요?” “민준 씨는 퇴근한 뒤에 재우를 데리러 간다고 했어요. 곧 도착할 거예요.” “그러면 기다릴게요.” 장민영은 고지수가 가장 좋아하는 차를 우려서 내오더니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고지수를 바라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어디 가셨던 거예요?” “기분 전환 좀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일도 시작하게 될 것 같아요.” 그 일을 떠올리자 고지수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정말 잘됐네요!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오늘 사모님께서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드릴게요.” “괜찮아요. 이혼 합의서만 챙기고 바로 떠날 거거든요.” 장민영은 당황했다. “정말로 이혼하시려고요?” “네.” 장민영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고지수에게는 이혼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장민영은 자신도 고지수의 재산이 되어 그녀를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 노민준은 그동안 퇴근한 뒤 매일 노재우를 데리러 갔다. 윤혜리가 함께 가겠다고 했을 때 노민준은 거절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일부러 악의를 품고 윤혜리에게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밥 한 끼 먹고 가라고 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그래야 그곳에 도착한 고지수가 그 장면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노민준은 그것을 고지수에게 주는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지수는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노민준은 그녀에게 연락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와 고지수 사이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는 건 늘 고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고개를 숙이게 되면 앞으로도 그가 먼저 고개 숙여야 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번호를 차단당한 상태라 연락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유치원에 도착한 노민준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윤혜리가 대신 차에서 내려 유치원 문 앞까지 걸어가서 노재우를 기다렸다. 줄 서 있던 노재우는 밖을 바라보다가 윤혜리를 발견하고는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숙였다. 노재우는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문밖에 있던 학부모들이 수다를 떨었다. “어머, 오늘도 윤 비서님이 데리러 오셨어요? 재우 엄마는요? 요즘 통 보이지 않네요.” 윤혜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볼일이 있다고 하시길래 제가 대신 왔어요.” 학부모들은 대놓고 말하지 않고 몰래 속닥거렸다. “볼일이 있어서 못 오는 거라고? 뻔뻔한 내연녀가 남의 남편을 빼앗으려고 아득바득 기를 쓰고 있는 거겠지.” “우리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알아? 세상에 어떤 집에서 아이를 마중 가라고 비서를 보내? 저기는 남자도 제정신이 아니고 여자도 아주 뻔뻔하단 말이지.” 윤혜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길을 택했으니 이 정도 비난은 감수해야 했다. 윤혜리는 두렵지 않았다. 노재우가 유치원에서 나왔다. 한 뚱뚱한 아이가 노재우가 윤혜리의 앞으로 걸어가는 걸 보더니 서둘러 노재우를 따라잡았다. “재우야, 너희 엄마 왜 안 오셔? 설마 너희 엄마 너를 버린 거야?” 노재우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가 엄마를 버린 거야!” 뚱뚱한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빛냈다. 아이의 엄마는 난산으로 세상을 뜨셔서 아빠랑 조부모님이 돌봐줬다. 뚱뚱한 아이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엄마를 버렸다고? 그러면 너희 엄마 나한테 줘. 할머니, 재우 엄마가 해준 쿠키 엄청 맛있어요! 우리 재우 엄마 데려오면 안 돼요?” 노재우는 곧바로 화가 나서 손을 뻗어 아이를 밀쳤다. “꿈 깨! 내가 버린 건 너도 가질 수 없어!” 노재우는 아이를 밀친 뒤 사과하지도 않고 도망쳤고, 윤혜리는 노재우의 뒤를 서둘러 따라갔다. 뚱뚱한 아이의 할머니는 노재우가 자신의 손자를 밀치자 매우 화가 났다. “뻔뻔한 내연녀나 은혜도 모르는 자식새끼나 다 똑같아. 사람을 밀쳤으면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러니까 친엄마도 버리고 가지!” 주변 사람들은 맞장구를 쳤다. 노재우는 차 쪽으로 달려갔고 윤혜리는 서둘러 따라가서 노재우를 대신하여 차 문을 열었다. 노재우는 차에 앉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씩씩댔다. 노민준은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담배를 든 손은 창문틀에 놓고 있었다. 그는 백미러를 통해 아들의 기분이 안 좋은 걸 확인했다. “왜 그래?” 윤혜리가 대답했다. “유치원에서 다른 친구가 시비를 걸어서 화가 났나 봐요.” 노재우가 말했다. “전부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가 안 오니까 그 뚱뚱한 애가 그런 소리를 한 거라고요!” 노민준은 대꾸하지 않고 담배를 계속 피웠다. 그러다 노재우가 뒤에서 기침을 하고 나서야 담배를 껐다. 예전에는 고지수가 늘 얘기해줬었는데 이젠 그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깜빡 잊고 있었다. 윤혜리는 노재우를 달래려고 했다. “재우야, 이모가 햄버거 사줄까?” 노민준은 미간을 찡그렸다. ‘또?’ 이번 주 4일 중 3일을 햄버거를 먹었다. 노민준이 말했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밥 먹을 거야.” 노재우는 대답하지 않고 창문을 바라보며 씩씩댔다. 노민준은 백미러를 통해 노재우가 볼을 부풀리고 있는 걸 보다가 문득 고지수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 노민준은 장난을 친답시고 고지수의 책상에 벌레를 던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지수는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었고, 그 탓에 그와 그녀 모두 복도에 서서 책을 들고 벌을 받아야 했다. 그때 고지수는 노재우 같은 표정을 했다.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로 당장 나를 달래달라는 표정을 해 보였는데 그때마다 볼을 꼬집으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뒤로 고지수는 점점 변했고 화가 나도 예전 같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게다가 고지수가 매번 양보했기에 노민준은 굳이 그녀를 달래주지 않았다.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뒤 노재우는 곧바로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윤혜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노민준의 말을 들었다. “오늘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만 돌아가. 기사님한테 집까지 바래다주라고 할게.” 고지수가 없으니 연기를 해도 보여줄 사람이 없었다. 윤혜리는 얼굴이 살짝 창백해지더니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서 내린 노민준은 계단 위에 선 아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걸 보았다. 노재우는 서둘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아주 큰 소리로 콧방귀를 뀐 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이러지 않았다. 순간 노민준은 심장이 저렸다. 황급히 안으로 들어간 노민준은 고지수를 보았다. 고지수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어딘가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다 죽은 나무에 새로운 싹이 트듯 생기가 감도는 모습이었다. 노민준은 고지수를 본 순간 왠지 모르게 목이 메었다. 고지수는 그들이 온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노민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윤혜리를 불렀다. “혜리야.” 고지수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긴 속눈썹이 그녀의 눈 아래 그림자를 만들었다. 고지수는 자조한 듯 웃었다. 이내 윤혜리가 미소 띤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이 집의 안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모님.” 노재우는 곧바로 윤혜리의 곁으로 걸어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 “혜리 이모, 가지 말고 여기서 저희랑 같이 밥 먹어요.” 노민준이 말했다. “아주머니, 혜리 왔으니까 혜리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해 줘요.” “...” 장민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민준은 고지수를 바라보며 은혜를 베풀듯이 말했다. “그리고 수저 한 세트 더 챙겨줘요.” 노재우는 곧바로 외쳤다. “싫어요! 엄마는 먹지 말아요! 전 엄마가 집에서 밥 먹는 게 싫어요!” 고지수가 말했다. “필요 없어. 난 이혼 합의서를 가지러 온 거니까. 이혼 합의서만 챙기고 바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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