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여수민은 입술을 깨물고 대답도 못 한 채 조용히 뒤따랐다. 가슴은 요동쳤고 머릿속은 이미 엉망이었다. 하준혁이 무슨 생각인지 전혀 읽히지 않아 그저 껍질 속에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하준혁도 더는 몰아붙이지 않았고 내내 말없이 운전만 했다. 사실은 오늘 시간을 비워 여수민을 데리러 온 김에 저녁이나 같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여수민은 기를 쓰고 거리를 두려 했다. 관계를 선 긋듯 피하는 태도에 하준혁도 기분이 상해서 밥이고 뭐고 먹을 맛도 안 났다. ‘뭐, 나중에 같이 먹을 날은 얼마든지 있을 거지만.’ 그는 조용히 차를 몰아 여수민이 사는 단지 앞에 도착했다. 여수민이 또다시 공손하게 배웅을 사양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수민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건을 들고 단지 안으로 달려갔다. 하준혁은 차에서 내려 차체에 기대서서 그녀의 등이 멀어지는 걸 조용히 바라보다가 돌아가려 했다. 그러던 여수민이 다시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너무 급했는지 단지 문턱에서 발이 걸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녀가 어렵게 모은 돈으로, 좌우 비교하며 겨우 사온 재료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깨질 건 깨지고 남어지는 굴러가고, 정말 엉망이었다. 하준혁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곧장 달려가는 순간, 단지 안쪽에서 막다른 골목의 망나니들처럼 보이는 남자 셋이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말도 없이 여수민을 향해 휘둘렀다. 여수민은 필사적으로 일어나려다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겁에 질린 눈빛, 울 것 같은 표정, 그리고 그에게 매달리듯한 의지. ‘하준혁 씨 아직 안 갔어...’ ‘다행이다. 안 갔길 잘했어.’ 하준혁은 얼굴을 굳히고 선두에 있던 남자를 발끝으로 걷어찼다. 이어 단번에 그의 손에서 야구방망이를 빼앗아들었다. 그가 몸놀림 아주 좋은 걸 보자 남자들 역시 섣불리 덤비지 못하고 눈치를 봤다. 하준혁은 손에 든 방망이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더니 여수민부터 일으켜 세웠다. “다친 데 없어요?” 그가 그녀를 품 안에 안고 얼굴을 찌푸렸다. 여수민은 놀라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