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서하영은 마침내 그동안 임주현의 가정교사들이 왜 그만뒀는지 알게 되었다. 재벌가 아이는 때릴 수도, 꾸짖을 수도 없으며 도리를 설명하면 잔소리로 여기고 좋게 달래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니 무력감에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서하영은 일어나서 테이블 위에 놓인 다트를 슬쩍 쳐다본 후 손을 들어 휙 던졌다. 정확히 다트판 중심에 꽂혔다.
세 번째 다트도 중심에 꽂혔을 때 임주현이 고개를 들어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하영은 양손으로 동시에 다트를 집어 든 뒤 보지도 않고 던졌다. 두 개의 다트가 같은 속도로 날아가 이전에 던진 다트를 밀어내고 동시에 다트판 중심에 박혔다.
임주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하영 옆으로 걸어가며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습했어요?”
서하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대답하지 않았고 임주현은 바로 흥미를 보였다.
“가르쳐줘요.”
서하영은 팔짱을 낀 채 책상을 가리켰다.
“오늘 할 공부 다 끝내면 가르쳐줄게.”
임주현은 콧방귀를 뀌었다.
“방법 좀 바꿔보는 건 어때요?”
서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어. 네 집에 두 번째로 온 건데 무능하다는 이유로 쫓겨날 수는 없잖아. 나도 체면이 있지.”
임주현은 비웃으며 말했다.
“삼촌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도 돼요. 삼촌이 그쪽보다 더 잘하니까!”
“그럼 지금 당장 삼촌 찾아가서 가르쳐 줄 건지 물어봐.”
서하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가르쳐 줄 거라면 이미 가르쳤겠지. 지금까지 그냥 있었겠어?’
임주현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잠시 고민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공부할게요. 하지만 공부 끝나면 활쏘기 가르쳐줘야 해요. 가능해요?”
“활쏘기?”
서하영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자 임주현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못하겠죠? 삼촌은 활도 백발백중이에요.”
“누가 못한대? 일단 공부나 해.”
서하영은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거짓말이면요?” 다트랑 활 쏘는 건 달라요!”
임주현이 도발적으로 말하자 서하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거짓말이면 내가 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약속한 거예요.”
서하영은 싱긋 웃었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하얗고 말랑한 얼굴에 금색의 부드러운 빛을 드리웠다.
...
타고난 집안 유전자 때문인지 임주현은 매우 똑똑하고 배우는 속도도 빨랐다. 한 시간 후, 두 사람은 이미 복습을 마치고 별장의 잔디밭에 서 있었다.
임주현이 활쏘기를 하고 싶다고 하자 집사는 미리 장소를 준비해 두었다. 움직이는 표적, 활과 화살, 보호 장비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임주현은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서하영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활과 화살을 들 수 있어요? 억지 부리지 마요. 지금 포기하면 그냥 날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되지만 화살도 못 쏘면 큰 망신이에요!”
서하영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하는 게 더 망신이야!”
그녀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자세를 곧게 편 뒤 활을 당겨 목표물을 조준했다.
오랫동안 활을 쏘지 않았기에 먼 곳의 표적을 보는 순간 기억 속 한 장면과 현재가 겹치는 듯한 착각이 들어 순간 멍해졌다.
휙!
소리와 함께 긴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고 바람을 일으키며 강렬한 소리를 내더니 표적의 중심을 정확히 맞췄다.
임주현이 환호하며 곧장 달려 나갔다.
“어떻게 한 거예요?”
서하영은 차분히 웃으며 말했다.
“어때?”
“가르쳐줘요!”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앞으로 내가 올 때마다 순순히 공부하겠다고 약속해야 해. 꾸물거리면 안 돼!”
서하영은 이때다 싶게 조건을 내걸었고 활쏘기에 정신이 팔린 임주현은 즉시 동의했다.
3층, 잔디밭이 보이는 발코니에서 임도윤은 느긋하게 난간에 기댄 채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잔디밭에서 활을 쏘는 두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서하영이 다시 한번 표적의 중심을 맞추자 그린 듯한 눈썹과 눈동자가 자유롭게 춤추듯 움직였다. 봄의 햇살이 그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얼굴 위로 반짝이며 사람이 생기발랄해 보였다.
임도윤은 전화를 끊고 자리에 서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서하영은 연속으로 세 발을 쏘아 모두 표적의 중심을 맞추었다.
임주현은 흥분해서 뛰쳐나갈 듯했고 서하영을 바라보는 눈빛엔 순수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임도윤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서하영이 주민정을 발로 찬 건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그건 호신술을 배워서 그렇다고 쳐도 화살을 쏘아 백발백중으로 맞히는 건 호신술에 포함되지 않는다.
...
서하영은 임주현과 한 시간 동안 놀다가 점심때가 될 때쯤 자신의 물건을 챙긴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2층에서 내려올 때 한소윤이 마침 물건을 든 채 들어오고 있었다.
한소윤은 서하영을 보고 멈칫하더니 이내 얼굴이 급속히 어두워졌다. 임도윤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진심인 거야?’
“또 보네요.”
한소윤은 임씨 가문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도우미에게 건네고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지만 눈동자는 차가웠다.
서하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문밖으로 걸어갔다.
“잠깐만요!”
한소윤은 서하영 앞을 가로막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오만하면서도 우아한 어투로 말했다.
“임씨 가문 같은 집안에선 절대 도윤 씨와 당신같이 평범한 여자가 결혼하게 두지 않아요. 알겠어요?”
서하영은 피식 웃었다.
한소윤은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나는 직설적이라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걸 싫어해요. 그쪽이랑 도윤 씨는 희망이 없어요. 그걸 그쪽도 잘 알았으면 좋겠네요.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사람과 만나는 거죠? 돈? 돈이라면 원하는 만큼 내가 줄 수 있어요.”
서하영의 눈동자는 맑고 투명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녀처럼 보였다.
“임도윤 씨보다 더 많이 줄 수 있어요?”
한소윤은 즉시 말했다.
“도윤 씨가 주는 것보다 더 많이 줄게요!”
서하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200억이면 그쪽 눈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게요. 어때요?”
한소윤은 당황하더니 문득 고개를 들어 서하영 뒤를 바라보았다.
“도윤 씨, 들었어요? 이 여자는 돈 때문에 도윤 씨와 만나는 거예요!”
심장이 철렁해 빠르게 고개를 돌린 서하영은 마침 계단 중앙에 서 있는 임도윤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베이지색 얇은 셔츠에 브라운 슬랙스를 입어 마냥 차갑지 않고 다소 나른한 기운을 풍겼다. 행동 하나하나에 뼛속 깊이 배인 고귀함과 우아함이 느껴졌다.
서하영은 옆에 있는 여자가 숨을 헉 들이키는 것을 듣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 남자의 외모나 내면 모두 극도로 훌륭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도윤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먹물처럼 검은 눈동자로 서하영을 계속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데려다줄게요.”
한소윤은 표정이 확 변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임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 씨, 이 여자가 방금 한 말 못 들었어요?”
임도윤의 서늘한 눈매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들었어요. 왜요?”
“허!”
한소윤은 비웃음을 터뜨리더니 깊게 숨을 들이쉬며 우아함을 유지했다.
“도윤 씨, 두 사람은 안 어울려요.”
임도윤의 미간에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말을 마친 그는 서하영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갈까요?”
“네.”
서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문을 나섰다.
한소윤은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이 선후로 문을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문득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임도윤은 직접 차를 몰고 서하영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서하영은 뒷좌석에 앉아 차 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늘의 일을 떠올리니 이유 없이 웃음이 나려고 했다.
임도윤은 백미러로 그녀를 바라보며 불쑥 물었다.
“왜 웃어요?”